초설에게


초설, 그 말이 맞아
시를 쓴다는 건 낯선 호숫가 벤치에 앉아
물속에 빠져버린 하늘을
다시 건져 올린다는 그 말이 맞아

그리고 하얀 글줄에 매달려
나를 조각한다는 말
다 맞는 말이야 그렇게 되면
결국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지

보름달 같은 어머니를 만나고
꽃을 좋아한 누나를 만나는 거지

어머니가 풀이하신
수학 문제의 모든 답은 하나
사랑=시라는 것을
시를 써가며 알게 되는 해답이지

초설은 시를 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되어
결국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까지 알게 될 거야

이생진(1929~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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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사람으로 알려진 이생진 시인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다. 그가 제주도 시인으로 알려진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시인은 시종일관 제주바다와 섬과 고독을 노래했다. 이 시편들로 인해 시인은 제주도 명예도민이 되었고, 성산포 바닷가에 있는 그의 시비는 관광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초설은 시조시인이자 불가에 귀의한 스님이다. 초설은 아호로 그의 시조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뇌를 한 걸음 물러난 곳에서 바라보며 해탈을 추구한다. 이생진 시인은 시단에 그닥 알려지지 않은 초설의 시조를 높이 평가했다. 이생진 시인이 큰형님뻘로 나이가 많았지만 두 시인은 서로 존경하며 교류했다. 평생 바다와 섬에 천착한 이생진 시인은, 바다와 섬 그 너머에 있을 초월의 경지를 추구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되어 / 결국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까지 알게 될 거야’. 이는 평범한 시인으로 사는 자신보다 수도승인 초설이 먼저 그 비의(秘意)를 알아버릴 것만 같은, 예술가적 시샘의 은근한 표현이다. 그렇듯 시인의 언어는 구원과 구도의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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