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장석광

모사드(Mossad)는 표적암살로 유명하다. 1972년 10월 16일 로마에서 살해된 팔레스타인 사람 와엘 즈웨이터(Wael Zwaiter) 사체에서 11발의 총알이 발견됐다. 한 달 전인 9월 5일 뮌헨에서 살해된 이스라엘 선수 1명당 1발씩이었다. 1발은 정확하게 머리에 박혀 있었다. 그때부터 ‘모사드’라는 이름은 복수·대담함·잔인함의 동의어가 됐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적(敵)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죽이는 조직으로 이미지화 됐고, 아랍인들은 모사드에 공포를 느꼈다. 누군가 의문의 죽임을 당할 때마다 모사드가 언급됐다. 모사드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모사드의 새로운 신화가 창조되기 시작했다.

엘리 코헨(1924-1965)은 모사드 스파이다. 사업가로 위장해 시리아 군부에 침투했으나, 1965년 1월 체포되어 그해 5월 18일 다마스커스 광장에서 처형됐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모세 다얀(Moshe Dayan)은 "엘리 코헨의 정보가 없었더라면 골란 고원 점령은 영원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며 엘리 코헨을 추앙했다. 코헨은 중령으로 추서됐고, 국립묘지에 추모 석판이 설치됐다. 모사드의 직간접 후원으로 다양한 언어권에서 엘리 코헨의 전기·소설·영화·드라마가 만들어졌다.

1987년 영국에서 제작된 ‘더 임파서블 스파이’(The Impossible Spy)는 알 아라비야 네트워크를 통해 아랍권 지역에도 방영됐다. 2019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미니 시리즈 ‘더 스파이’(The Spy)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됐다. 2020년 알 자지라는 ‘모사드 에이전트 88’(Mossad Agent 88)을 아랍권 전역에 방영했다. 엘리 코헨을 전설로 만든 것은 모사드였지만, 모사드를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만든 것은 엘리 코헨이었다.

1996년 9월 18일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함의 무장공비들이 우리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는 준전시상태가 보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북한은 연일 방송을 통해 ‘백배, 천배 보복’을 협박하고 있었다. 10월 1일 20시 45분쯤 블라디보스톡 최덕근(1942-1996) 영사가 자신의 아파트 3층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에서는 북한 공작원들이 독침에 사용하는 ‘네오스티그민 브로마이드’ 독극물 성분이 검출됐다. 두개골은 함몰됐고 오른쪽 옆구리에 두 차례 독침 자국이 발견됐다. 당시 최 영사는 백 달러 위조지폐의 유통경로를 추적하고 있었다.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30세 전후 용의자 3명이 현장에서 목격된 정황상 북한의 암살로 추정됐다.

최덕근은 사후 이사관(2급)으로 추서됐고 보국훈장 천수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었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에 수사 독려 공문만 몇 차례 보냈을 뿐이었다. 2011년 10월 1일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정부의 이의 제기로 2012년 10월 수사 재개가 결정됐지만, 범인검거는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

최덕근은 국정원 순직자 중 유일하게 공개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는 최덕근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26년째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엘리 코헨은 알아도 최덕근은 모르고 있다. ‘엘리 코헨은 들어봤지만 최덕근은 듣도보도 못했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을 모사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규현 신임 국정원장도 국정원을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모사드에 엘리 코헨이 있다면 국정원엔 최덕근이 있다. 10월 1일이면 최덕근 순국 26주년이다. 최덕근이 국정원의 엘리 코헨이 된다면 국정원은 저절로 한국의 모사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정원장의 진정성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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