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

인왕산·북한산...산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서울
광화문서 시작 514년간 한양을 지킨 18.6km 성곽
돈의문 터~인왕산~창의문까지 2시간 30분 코스

인왕산 산세와 잘 어우러진 한양도.
인왕산 산세와 잘 어우러진 한양도.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한양도성. 조선시대부터 서울을 감싸 안고 있는 이 성곽을 따라 늦여름을 걸었다. 땀을 흘린 만큼 보람 있었고 즐거웠다.

서울은 성곽도시다. 조선시대, 이 도시의 이름이 ‘한양’(漢陽)으로 불릴 때부터 그랬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10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다. 곧이어 궁궐을 짓고 종묘와 사직을 정비한다. 국가의 기초를 닦기 위해 태조가 또 한 일은 거대한 성을 만들어 도시를 둘러싸는 것이었다. 1396년 그가 왕에 오른 지 5년이 됐을 때, 태조는 정도전에게 축성을 명한다. 한양은 밖으로는 아차산(동), 덕양산(서), 관악산(남), 북한산(북)의 외사산(外四山)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으로는 낙산(동)과 인왕산(서), 남산(남), 북악산(북)의 내사산(內四山)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였다. 한양도성은 바로 내사산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성곽 공사는 1396년 숭례문에서 시작해 다음 해 4월, 홍인문의 옹성을 완공하며 끝났다. 모두 19만 7,400명의 백성이 동원됐다. 완성된 성의평균 높이는 5~8미터, 전체 길이는 18.6킬로미터에 달했다. 이를 ‘한양도성’이라고 불렀는데 1396년에서 1910년까지, 모두 514년간 도성 기능을 수행했다.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 그 역할을 했다.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 초입은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 초입은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이번 주에는 이 성곽을 따라 걸어본다. 요즘 딱 걷기 좋을 때다. 성곽을 따라 ‘한양도성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백악, 낙산, 흥인지문, 남산, 숭례문, 인왕산 등 모두 6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에는 한양도성은 순성길을 따라 하루에 돌아볼수 있지만, 내사산을 중심으로 한 인왕산과 백악, 낙산, 남산(목멱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 숭례문 구간으로 나누어 걷기를 추천하고 있다. 길은 잘 정비되어 걷기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성곽길이 자리 잡은 능선은 아무리 높아도 400m를 넘는 곳이 없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300m, 남산이 200m이고 낙산은 100m에 불과하다. 반나절, 아니 2시간만 할애하면 서울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다.

재미있게 걷고 싶다면 인왕산 구간을 추천한다. 돈의문 터에서 시작해 인왕산 정상을 지나고 창의문에 닿는 코스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제법 땀을 쏟아야 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수고를 제하고 남는다. 등산화를 신어면 좋지만 운동화로도 충분하다. 물과 간단한 간식 정도만 챙기자.

인왕산 구간은 한양도성의 위용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코스다. 인왕산 능선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성곽의 위용이 박력 있다. 탁 트인 조망도 걷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돈의문 터에서 인왕산 정상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 인왕산 정상에 거의 다 닿을 즈음에 급경사 코스가 있지만 오르는데어렵진 않다. 지칠 때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깊고 시원한 숲길이 계속 걸으라고 유혹한다.

홍난파 가옥.
홍난파 가옥.

돈의문 터는 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태조 때 처음 세워졌다는데 그 위치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곳에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만들어졌다. 1960년부터 1980년대까지의 생활 공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역사 체험 마을이라고 보면 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집도 있고1950년대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1970년대 영화관도 재현되어 있다.

‘봉선화’, ‘고향의 봄’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난파 홍영후가 살던 홍난파 가옥도 가깝다. 1930년에 독일 선교사가 지은 붉은색 벽돌건물로담쟁이 덩굴이 멋지게 한쪽 벽을 뒤덮고 있다. 홍난파는 생애의 말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집 앞에는 홍난파의 흉상도 세워져 있다. UPI 서울특파원으로 살면서 3·1 운동을 세계에 알렸던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딜쿠샤도 근처에 있으니 가볼 만하다.

성곽길에 오른다. 초입은 아늑한 숲길이다. 숲은 초록이고 그늘이 깊다. 바람 소리가 귓속으로 스민다. 새소리도 멀리서 들린다. 길은 그다지 급하지 않다. 동네 뒷산 걷듯 천천히 걷는다. 어디쯤 왔나 문득 뒤돌아보니 서울 도심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숲길을 빠져나오니 성곽이 인왕산 정상을 향해 힘껏 뻗어나간다. 성곽 끝에 멀리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버티고 서 있다. 인왕산은 해발 339m인 낮은 산이지만 치마바위, 선바위, 기차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아 그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풍수지리상 서울을 지키는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한다.

정상 오르기 전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일반 등산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선바위에 닿는다. 기도 터로 유명하다. 멀리서 보면 스님 두 분이 참선하는 모습과 꼭 닮았다. 선바위는 조선 개국의 두 주역인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기 싸움을 벌인 곳이다.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둬야 한다고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정도전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각각 불교와 유교를 대표하는 이들이 조선의 통치 이념을 유교와 불교 중 무엇으로 선택할 지 기싸움을 벌인 것이다. 결과는 유학자 정도전의 승. 그는 태조 이성계를 설득해 선바위를 성 밖으로 밀어낸다. 이를 두고 무학대사는 "이제 승려들은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다닐 것"이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다시 성곽길에 오른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리에 힘을 준다. 정상까지는 곧장 오르막길이다. 몇 걸음은 로프를 잡아야 한다. 인왕산 정상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광화문과 경복궁, 청와대가 아득하다. 멀리 서울N타워도 보인다. 인왕산에서 보면 정도전이 경복궁을 그 자리에놓은 이유를 알 수 있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 보아도 궁을 짓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는 것 같다.

한양도성길에서 만난 서의의 야경.
한양도성길에서 만난 서의의 야경.

여기서 잠시 다리를 쉰다. 돈의문 터에서 천천히 걸어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인왕산 정상에서 창의문까지는 내내 내리막길이다. 힘들 것 없다. 숲도 좋아 동네 뒷산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으면 된다. 걷다 보면 어느새 ‘시인의 언덕’이다. 청운동 인왕산 일대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하숙하며 산책을 즐기던 곳이다. 이곳에 윤동주문학관이 만들어져 있다. 원래는 인왕산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였는데2012년 윤동주 문학관으로 꾸몄다. 2012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무총리상,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고, ‘한국의 현대건축 Best 20’에 선정되기도 했다. 건물이 윤동주의 시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단아하다. 내부에는 윤동주 시인의 유품과 자필 서신, 생애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백악 구간으로 곧장 들어서서 한양도성길 걷기를 이어가도 되고 부암동으로 내려와 걷기를 마무리해도 된다. 부암동에는 여기저기 고개를 기웃거리고 엉덩이를 붙일만한 카페며 식당이 많다.

[ 여행 정보 ]

남도분식.
남도분식.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http://seoulcitywall.seoul.go.kr)에서 탐방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서촌에 자리한 남도분식(02-763-7778)은 시래기 떡볶이, 빨콩떡볶이, 짜장떡볶이, 김밥쌈 등 독특한 분식 요리들로 인기가 많은 집이다. 튀김을 상추에 싸먹는 상추튀김이 시그니처 메뉴. 서촌을 찾는 젊은 여행자들이 꼭 인증샷을 남기는 곳이다. 부암동에 자리한 수제버거집 레이지 버거 클럽(02-394-2547) 치즈를 듬뿍 넣은 클래식 치즈 버거, 구운 통마늘과 로메인을 넣은 레이지 갈릭 버거, 아보카도를 듬뿍 넣은 버거 등을 판다.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아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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