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언어)은 사피엔스를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한 요체다. 그 과정에서 인류 문명사라는 드라마가 펼쳐졌다. ‘말’은 ‘신탁神託’에서 인간의 것,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것이 돼 간다. 수천 년 ‘말’을 하고 살아온 인류가 드디어 18세기 경부터 ‘국어’를 하기 시작했다. 동북아에선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의 일이다.

2500년전 주나라의 여러 제후국들 역사서 『國語』가 있지만, 우리말 ‘국어’는 National language(영)·Langue nationale(불)의 일본어 번역 ‘Kokugo國語’에서 왔다. 19세기 후반 ‘국민 만들기(nation building)’가 지상 과제였던 일본에서 필요 불가결한 전략으로 고안된 개념이다. ‘Kokugo’는 교과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근대적 국민의 정서·논리를 교육하는 매개이자 목표가 됐다. ‘국어라는 사상(國語という思想)’이라고 표현될 정도다.

‘국어’가 성립하면 ‘국사’ ‘국학’도 뒤따른다. ‘국어사랑=나라사랑’은 근대를 겪는 모든 나라의 보편 현상이었다. 1960~70년대를 우리나라의 ‘실질적 근대’로 보는 이유의 하나다. 일제시대 ‘Kokugo’를 벤치마킹하며 ‘조선어’는 ‘우리말’로 키워져 해방 후 ‘국어’가 됐다. 일제의 ‘Kokugo’ 강요는 세계식민사에 유례없이 ‘단순 약탈’ 대신 ‘동화’를 추구하다 나온 무리수였다.

‘Kokugo’는 19세기 후반 모어(母語)에 절망한 일본인들이 ‘영어공용화’를 구상한 이후 극적으로 달성된다. 근대적 활자매체(신문·잡지), 거기 실린 ‘문학·논설의 언어’를 통한 결실이었다. 이후, 유학생들을 통해 대량의 일제(日製) 한자어가 중국·조선으로 흘러 들었다. 그리고 이들 한자어와 현지 속어들이 어우러져 각각의 표준어(국어)가 성립한다.

고전중국어(한문)의 권위를 한글이 대체하면서 출발한 우리말 근대화는, 20세기초 일본유학생들(이광수·김동인 등)을 통해 급진전했다. 그 시기부터 우리말은 현대인에게 낯설지 않는 문체가 된다. 고급 문학·학술이 가능한 언어로의 결정적 도약이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