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이어 ‘소설’을 보자. 문학의 한 형식이자 중심 장르가 ‘소설’이다. 농담 내지 빈정거림의 "소설 쓰시네"는 ‘지어낸 이야기(fiction)’라는 점을 빗댄 것이다. 문학으로서의 소설은 개연성 있는 사실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해 삶의 진실을 포착한다. ‘小說’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0여년전 한나라 시대다. 약 700년 전 원나라땐 시중의 잡다한 이야기를 보고하는 글의 장르 이름으로 쓰였다. 민간의 전승·전설·설화 등 ‘시시한’ 얘기, 즉 전통 지식인들이 추구하는 ‘큰 도(大道)’의 대척점에 있던 말이었다.

장편·단편 다 ‘小說’이니, ‘小’가 길이의 문제는 아니다. ‘小說’이 청나라 말기 이미 서구의 ‘스토리’ ‘픽션’ ‘로만스’ 등의 번역어로 두루 쓰이고 있었으나, 1885년 경 일본에서 처음으로 다른 장르와 확실히 구분돼 ‘노블(novel)’의 번역어로 자리잡았다. ‘기승전결 서사구조를 가진 상당한 길이의 이야기’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우리말 ‘소설’은 여기서 왔고, 중국어 ‘小說’ 역시 이 의미로 대체됐다.

모든 문명권에서 언어예술은 노래(시)로 시작한다. 그게 고급스럽게 발전해 지식인의 전유물이 되는데, 보통 사람들은 역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즐겼다. 이야기를 소비하는 중산층이 중국에선 15세기말 생겨나지만 그들은 정치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의 ‘기이한 이야기(傳奇)’들 역시 현실 문제의 치열한 재구성이 되진 않았다.

19세기말 망국의 위기를 맞아 ‘小說’의 대중적 감화력과 정치적 효능에 주목한 것은 청말의 언론인·사회운동가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였다. 그의 ‘소설과 군치(群治)의 관계를 논하다’가 동북아 지식인들에게 큰 감명을 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신채호 선생까지 소설 창작에 나섰을 정도다. 인간은 ‘이야기’ 없이 못 산다. 구한말 신소설 이래, 인생과 시대를 형상화한 서사 장르의 중심에 ‘소설’이 있었다. 영화·드라마가 없던 시절, 그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연재소설이 신문·잡지의 판매부수를 좌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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