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
박인기

1973년, 남인수가 불러 국민적 대중가요가 된 애수의 소야곡3절에 문풍지(門風紙)’가 등장한다. 나는 이 대목 문풍지에서 우리 한옥 창호지 문의 전통 정서와 토속 서정을 한껏 음미한다. 이 노래 역시 바람도 싸늘한 문풍지로 인해 애수의 곡조를 한껏 끌어 올린다.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던고/ 모두가 흘러가면 덧없건마는/ 구슬픈 이내 가슴 달랠 길 없고/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하구나.”

문풍지란 말이 낯설어진 세태이다. 문풍지는 겨울철 한옥의 문과 문짝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하여 문짝 주변을 돌아가며 덧대어 풀로 바른 한지 종이. 바람이 세게 불면 문풍지는 바람에 떨리면서 소리를 낸다. 그걸 문풍지가 운다고 했다. 그래서 문풍지를 몸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문풍지는 청각 이미지로 먼저 온다. 겨울밤이면 방 안에서 문풍지 우는 소리를 듣고 자랐던 한국인이다.

그러하니 노래 가사, ‘바람도 문풍지에 싸늘하구나문풍지 울게 하는 바람 소리 싸늘하다로 들어도 좋고, ‘찬 바람 소리에 문풍지도 싸늘히 우는구나로 들어도 좋다. 어떻든, 바람에 떨리며 우는 문풍지 소리가, 사랑을 잃고 애달파 우는 화자의 마음 소리에 가닿는 데서 문풍지 소리는 전통문화의 한 기호가 된다.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그러하다. 문풍지의 문화적 맥락을 따라가노라면, 문풍지 듣기가 만들어 내는 정서적 분위기가 이처럼 오묘하다.

문풍지는 한지 창호지로 된 문()을 기능적으로 완성하는 마침표 기능을 한다. 문풍지 없는 고옥 창호지 문의 뻘쭘함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문풍지 또한 한지의 미덕과 풍습을 오롯이 표상한다. 문풍지 소리를 향수로 그리워하는 오늘의 한국인들은 또 하나 듣고 싶은 게 있다. 그것은 전통 한지가 마침내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일이다. 머지않아 기쁜 소식이 들리기를 믿고 기다린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