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1941년, 가수 백년설이 부른 노래에 ‘만포선 길손’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뒤에 이미자가 부르기도 했다. 만포선은 평남 순천에서 북으로 달려 압록강 만포에 이르는 300㎞의 철길이다. 강을 건너면 북만주 벌판으로 간다. 노랫말에 ‘진양조’가 나온다.
“만포진 구불구불 육로길 아득한데/ 철쭉꽃 국경선에 황혼이 서리는구나/ 톳자리 주막방에 목침을 베고 누워/ 흐르는 진양조에 내 사랑 그리워진다./ 날이 새면 지향 없이 떠나갈 양치기 길손.”
유랑의 시대 타관 객지 주막 방에 누워 듣는 ‘진양조’, 그 곡조에 서리는 한의 에스프리는 한국적이다. 애틋하고 애잔하고 좀 구슬프다. 정처 없는 길 위에서 쓸쓸히 탄식하는 자아를 진양조로 불러서 떠올리는 데에 그 음률의 깊은 맛이 있다. 진양조는 느린 장단으로, 한국인의 슬픔이나 한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장단이다. 판소리 춘향가의 십장가나 옥중가, 그리고 심청가의 심봉사 부인 곽씨 부인 유언 대목 등이 진양조에 실려진다.
진양조를 듣는다. 꼭 판소리가 아니어도 좋다. 쓸쓸하고 슬픔이 겨우면, 내 안에서 그 무엇이 흘러 나와서 스스로 탄식이 되기도 하고, 그 탄식이 나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내가 어떤 곡조를 진양조로 슬프게 듣는 동안, 또 다른 내가 조용히 나를 불러서 다독인다. 단언컨대 진양조는 쉽사리 한국인 곁을 떠나지 못하리라.
어릴 적 할머니는 근심이 깊어지면 당신 혼자서 무언가 느리고 처지게 웅얼거리셨다. 그럴 때는 찬송가조차도 진양조의 리듬에 실렸다. 처연함이나 슬픔이 마냥 나쁘지는 않다. 슬픔도 힘이 된다. 진양조 듣기를 하면서 만해(卍海)의 ‘님의 침묵’ 한 구절을 마음에 품는다.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