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주동식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크리스천 입장에서 성직자들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올리는 성경 말씀이다. 믿는 자들, 성직자들의 기본적인 역할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며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고 함께하는 것,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자원을 공급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성직자는 정치적 처신이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하지만 성직자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의견이 없을 수 없고, 특정 정당에 소속감을 갖거나 지지하는 것도 터부시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런 정치적인 의견이 성직자가 돌보는 양떼에 대한 돌봄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가령 민주당의 입장에 몰입해 그 정파성이 하나님 종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앞선 성직자가, 국민의힘 당원인 믿는 자의 기쁜 일과 슬픈 일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돌봐줄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성공회와 가톨릭 사제들의 윤석열 대통령 저주 발언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참담했고 일종의 공포심마저 느꼈다. 이 나라 종교인들의 신앙과 이성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졌으면 이런 언행이 가능할까 싶었다.

이 정도면 그 사제들은 이미 성직자의 정체성보다 좌파 지지자의 편향이 훨씬 더 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제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가장 큰 권리와 축복을 스스로 팽개치는 처신 아닌가 싶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

성직자는 하나님의 창고지기이다.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자원을 관리하고 세상에 내어주는 자로서 그는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도우심과 보호하심이다.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성직자는, 이 세상 기준에서 별것이 없어 보일지라도, 세속의 눈으로는 분별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거대한 은혜가 반드시 작동한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실감하고 있다.

위의 성경 말씀은 그런 성직자로서의 역할과 권능을 포기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일 것이다. 짠맛을 잃은 소금이 밖에 버리워져 사람들 발에 밟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종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성직자에게는 거룩한 힘의 보호가 사라지고 세상의 잔인한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의미라고 이해한다.

또 하나,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사제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사회적 현실을 판단할 때 게으르고 미련하면 안된다는 충고가 그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을 보면 그 사제들의 사회적 의식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1987년 이전 민주화운동 당시의 좌파 도그마를 여전히 철석같이 신봉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사회적 화석’이다.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권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젊은이들의 미래를 절망으로 몰아넣은 사실이,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보다 북한을 더 이롭게 하고, 미국·일본보다 중국과 더 가깝게 지내려고 광분한 모습을 외면한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등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엄청나게 타격을 입은 것도 이들에게는 관심 밖이다.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이 사제들이야말로 현실에 무지하고 게으른 자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현실에 가장 무지한 자들이 현실에 가장 날선 발언을 터뜨리는 현실. 이런 현실을 빗대 예수님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고 경고하신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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