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가톨릭을 말할 때 언급되는 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다. 1962~65년 열렸던 일련의 공의회야말로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현대가톨릭의 기틀이란 설명이다. 얼마 전 "방울" 발언으로 시끄러웠던 돈키호테 신부 함세웅조차 자신의 행동은 공의회 정신에 충실하다고 떠벌인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자신의 사목 원칙은 공의회 정신에서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공의회 이후 하나님은 교회 못지않게 세상을 통해 직접 일하신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신학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김 추기경 경우, 박정희 시절 권력과의 충돌 역시 공의회 정신 실천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그가 초고속으로 추기경이 됐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바티칸은 1960년대 성장하던 가톨릭국가 대한민국에서 김수환이란 스타 탄생을 원했다. 그래서 20세 연상의 노기남 대주교를 제치고, 그를 한국가톨릭의 얼굴로 내세웠다.

다만 공의회에는 빛과 그늘의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우선 이전까지 라틴어로 집전하던 미사를 그 나라 토착 언어로 하도록 허용했다. 그게 교회 토착화의 계기가 된 건 맞다. 결정적으로 타 종교와의 대화도 선언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인정이다. 제국주의 종교 가톨릭이 바뀌었다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하지만 오늘날 개운찮은 종교 다원주의 흐름, 그리고 현대가톨릭의 ‘잡탕 종교’ 조짐이 문제다. 교황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망칙한 일도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김수환·함세웅 식 사회참여가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다. 가톨릭이 교회를 등한시한 채 역사 현장 쪽으로만 달려가는 것이다. 그 결과 남미 해방신학, 그것의 한국적 변용인 70~80년대 민중신학이 죽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날뛰는 것도 그 맥락이다. 함세웅이 "정진석·염수정 추기경 신학은 낡았다"고 손가락질하는 배경도 그것이다.

오늘 진실을 말하자. 그들 모두는 기독교 좌파로 분류된다. 한 손에 성경, 다른 한 손에는 마르크시즘을 쥔 수상한 신학이다.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의 대화를 강조하는 뉴 패션의 신학자들이 예전 ‘희망의 신학’을 말했던 에른스트 블로호, 그리고 뭔가 불그죽죽한 신학자 하비 콕스, 구티에레스 등이다. 한국의 안병무·서남동 등은 그 아류다. 세상이 어지럽다. 그래서 진리가 더욱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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