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기가 문화 대통령이란 닉네임으로 불리는 걸 좋아했다. 1990년대 당시로선 생소했던 지식산업을 들먹이는 연설을 자주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진짜 문화 대통령은 박정희다. 민족문화에 대한 그의 집념도 유명하지만, 그는 1970년대 ‘문화는 제2의 경제’란 휘호를 자주 썼다. 유영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의 견해도 그쪽이다. 그는 "박 대통령은 당시 이미 2000년대 BTS의 등장을 꿈꿨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공감한다.

하지만 문화의 시대인 요즘 문화 대통령이란 말은 영향력이 막강한 지식인·기업인·가수 등을 지칭한다. 일테면 사람들은 90년대 가수 서태지를 두고 문화 대통령이라고 즐겨 표현했다.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뜻의 ‘문화권력’이란 어휘도 있다.

문화권력은 문화·언론·교육 등 소프트파워 영역에서 숨은 영향력을 끼치는 이를 가리킨다. 좌파의 중추인 백낙청·조정래·리영희 등이 그런 부류다. 단 현재까지도 무시 못할 패권을 휘두르며 문화 대통령 혹은 문화권력으로 불리는 막강한 여성이 따로 있다. CJ그룹 부회장 이미경이다.

1958년생. 그의 할아버지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다. 이미경의 생일파티 때는 마이클 잭슨·머라이어 캐리·오프라 윈프리까지 동원됐다는 소문도 있다. 3년 전 영화 ‘기생충’으로 미 아카데미상까지 거머쥐었으니 거칠 게 없다. 그런 이미경에게 정부는 며칠 전 금관문화훈장까지 덜컥 안겨줬다. 한국 영화와 콘텐츠 산업을 성장시킨 공로란다.

문제가 있다. 가장 높은 영예인 금관이 과연 이미경에게 어울리는 훈장일까? 좌파 이미경에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주는 그 어떤 훈장도 적절치 않다는 반대론자도 있다. ‘기생충’을 포함해 ‘광해:왕이 된 남자’,‘화려한 휴가’, ‘공동경비구역 JSA’등 그동안 그가 손댄 영화 상당수가 삐딱한 탓이다. 그게 영화로 포장된 독극물일 수도 있음을 이미경만 모른다.

그래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정부는 이미경 퇴진을 비공식적으로 추진했을까. 좌파 문재인도 이미경에 대한 서훈을 감히 추진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화전쟁을 선포해도 모자랄 윤석열 정부에서 그에게 훈장을 준다? 전임 장관 박보균의 결정이라고 발뺌 마라. 그렇게 한다고 장관 유인촌이 면책되는 건 아니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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