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요즘 연말 분위기는 트로트 오디션이 다 책임진다. 올해도 TV조선과 MBN의 대결 구도다. 흥미로운 건 21일 첫 방송하는 TV조선 ‘미스트롯3’에 앞서 선제공격을 한 MBN ‘현역 가왕’의 흥행이다. 트로트 중흥을 개척한 서혜진PD 표 오디션은 뭔가 다른데, 이번 컨셉트는 트로트 한일전이다. 양쪽에서 국가대표 톱7을 각각 뽑아 내년 ‘한일가왕전’을 벌인다는 그림이다.

세상이 알 듯 트로트 원조는 일본 엔카다. 하지만 현재의 기세와 다양성은 단연 한국이기 때문에 ‘한일가왕전’은 흥미로운 우정의 무대가 될 것이다. 이런 흐름은 반일에 매달렸던 문재인 시절이라면 꿈도 못 꿨다. 엔카의 경우 엄청 세련됐지만 양식화된 노래에 그친다. 우린 정통과 세미가 따로 있고, 댄스-록-발라드-EDM(전자댄스음악)과 만나 무한 진화 중이다.

‘현역 가왕’의 현역 가수끼리 첫 대결은 대박이었다. 눈이 시원해지는 퍼포먼스의 하이량, 기품있고 절제된 김산하·류원정, 트로트의 미래 전유진 등은 두루 훌륭했다. 발라드의 퀸으로 통하던 가수 린이 트로트에 진심이라며 이쪽에 덜컥 합류한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지난주 관객을 쓰러뜨린 가수는 따로 있다. 누구는 그 노래에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지만,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 문화사적 사건에 속하는 무대였다. 상대적으로 낯선 가수인 김양이 주인공이다. 그가 일본 엔카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의 대표곡 ‘흐르는 강물처럼’을 번안해 ‘그대라는 꽃’을 부른 것이다.

이 노래를 부른다고 했을 때 순간 두 감정이 스쳤다. 트로트 한일전을 앞두고 최고의 선곡이 되겠다는 기대감이 우선이다. 단 격이 떨어지게 부르면 민망해지겠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미소라 히바리 못잖은 안정된 해석과 가창력에 모두 놀랐다. 그날 자체평가에서 박혜신과 함께 공동 1위를 한 것도 자연스럽다. 김양과 미소라 히바리, 둘은 안정된 중역대의 힘으로 인생의 노래를 불러서 사뭇 닮은꼴이다.

무엇보다 한일 사이에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는 걸 확인했고, 내년 트로트 한일전 성공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때 상대국의 노래 바꿔 부르기 등도 멋질 것이다. 일부 시청자들은 왜 하필 엔카냐고 투정이지만, 속 좁은 소리다. 우린 오래 전 일본 대중문화를 전면 개방했다. 이번에 되로 주고 나중 말로 받으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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