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황근

지난 22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정부는 악법의 대명사였던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폐지하고, 도서정가제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규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두 법은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내걸었지만 실제 효과는 그와 정반대였다. 특히 단통법은 통신사들의 편법 영업으로 사실상 사문화되어 버린 상태였다.

두 법이 제정된 논리는 아주 순진하다. 통신사업자들의 단말기 보조금 경쟁과 서점 간 할인 경쟁에 따른 소비자들의 피해를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가격 경쟁을 못하게 만든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누구나 같은 가격으로 통신단말기와 서적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규제로 생각될 수도 있다. 더구나 도서정가제는 제작자에게 원가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출판계가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가격 경쟁이 사라지면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실종됐다. 도리어 판매업자인 통신사업자와 대형서점들에게 가격 독점을 허용한 것처럼 됐다. 품질경쟁은 고사하고 유통사업자들의 배만 불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선한 의지를 갖고 만든 규제일지는 몰라도 결과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정보경제와 플랫폼 유통사업, 지식상품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유통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하지 않게 되면 중간판매업자들의 이익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독과점 구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그렇게 발생한 추가 이익이 단말기 제조사나 출판사업자에게 이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겉으로만 그럴듯한 일종의 포퓰리즘 정책인 셈이다.

국내 통신시장은 세 사업자가 견고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출판유통사업은 몇 개 대형서점들이 유통시장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가격 경쟁을 못하게 한다고, 유통사업자들이 나서서 품질경쟁을 할 유인(誘因)이 별로 없다. 도리어 가격 경쟁이 불가능한 상태가 중소 혹은 신규 유통업자들의 시장 진입을 봉쇄하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독점구조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계하는 양면 시장 속성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들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고착효과’(lock-in effect)를 극대화하려 한다. 이렇게 형성된 독과점 상태에서는 플랫폼 사업자가 가격결정권을 주도하게 되고, 생산자와 소비자는 이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도서 상품은 추가 생산에 따른 한계비용이 아주 낮은 무형 지식상품이다. 그러므로 무형 지식상품 생산자는 시장 환경에 따라 가격을 차별화시켜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어쩌면 이것은 지식산업의 토대가 되는 기본 원리다. 도서정가제는 시간에 반비례해 교환가치가 떨어지는 지식상품으로서 도서상품의 시장원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거대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한 아마존의 성공 요인은 지식상품의 원리를 이용한 가격 차별화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웹툰, 웹소설 같은 웹 콘텐츠만 도서정가제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문제가 있다. 더구나 출판업자들의 납품 원가를 낮춰 마진율을 높여온 대형서점들의 거래 관행을 고려한다면, 도서정가제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출판업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통법과 도서정가제가 낳은 문제점들은 급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더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글로벌 OTT들이 주도하고 있는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의 독과점 구조는 크게 유의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미디어 이용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상 콘텐츠 투자가 소비자 후생으로 이어지지 않고,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들의 이익만 늘려주고 있다는 소리가 적지 않다. 단통법과 도서정가제 교훈은 향후 디지털 영상미디어 정책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