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황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여야 모두 "이번 선거에서 지면 끝"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다수의 선택을 통해 사회적 통합과 정치적 효능감(efficiency)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거가 승자와 패자를 확실히 구분하고, 승자독식 구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선거는 총칼만 쓰지 않을 뿐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싸움판이 된 듯하다. 미디어 역시 그 수단에서 예외가 아니다. 아니 가장 유용한 무기가 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정치권에서 가짜뉴스나 허위정보는 아주 중요한 선거 전략이 되고 있다.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캠페인 중심에 가짜뉴스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짜뉴스를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짜뉴스를 유용한 캠페인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본격적인 선거기간을 앞두고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더구나 예방하거나 신속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약한 상태에서, 가짜뉴스 양식은 빠른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챗봇을 활용해 만든 가짜뉴스와 동영상을 이용한 딥 페이크(Deep Fake) 뉴스가 그것이다. 전자가 내러티브, 즉 허구를 사실처럼 꾸미는 것이라면, 후자는 사실처럼 영상을 조작한 가짜뉴스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사진을 조작하는 선전술을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챗봇이나 딥 페이크를 이용한 가짜뉴스의 위력은 진위를 식별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또 SNS 같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어 삽시간에 위력을 발휘한다. 이 점 때문에 2~3주 길어야 한두 달 만에 승패가 결정되는 선거 기간 중에 유포되는 챗GPT와 딥 페이크로 만든 가짜뉴스들의 폐해는 매우 심각하다.

무엇보다 허구의 사실들이 확산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거 결과에 직접 영향을 미쳐 정치과정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 근간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극단적으로 지형화된 정치 구도와 맹목적 지지층 때문에 가짜뉴스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20~30%에 달하는 정치 무관심층과 지지자를 정하지 못한 미결정자들에 가짜뉴스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 좌시할 수 없다. 정치적 관심이나 관여도가 낮은 이들은 지지자를 결정하는 판단과정에서 비본질적 요인들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뉴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려는 인지적 노력이나 판단 능력이 낮아,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즉 챗봇이나 딥 페이크를 이용한 가짜뉴스들은 중도층의 투표 결정 과정에서 자극적 용어나 영상 클립 같은 주변적 단서에 의존하는 ‘주변 경로(peripheral route)’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사상가들이 기대했던 ‘사려 깊은 시민(well-informed citizen)’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신 집단정서와 맹목적 충성심으로 무장된 중우정치(mobcracy)를 팽배시킬 수 있다.

일부 집단지성을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가짜뉴스들은 언젠가는 사실 여부가 판단될 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두 달 만에 승패가 결정되는 선거 관련 가짜뉴스는 설사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그 폐해가 원상 복구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윤석열 검사 커피 조작’으로 지난 대선 결과가 뒤바뀌었다면, 진실이 밝혀진 지금 와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지 지극히 의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첨단 인공지능과 영상 조작으로 무장한 가짜뉴스 대책은 우려만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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