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면 기분이 좋다. 나 같은 인간도 가끔은 좋은 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세금을 낼 때는 마땅한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하면서도 약간은 아깝다. 툭하면 뉴스에 등장하는, ‘혈세, 이렇게 새고 있다’ 같은 보도 때문이다. 공무 추진 과정에서 시행착오로 날아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러나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공약으로 세금이 새는 건 짜증난다. 정확히는 세금이 새는 게 아니라 돈과 그 동네 표를 바꾸는 것이겠다.

기관장들의 업무 핑계 외유 같은 것도 그렇다. 외국 나가는 게 자랑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어렵게 벼슬 했으니 나랏돈으로 한 번 다녀오겠다는 전근대적이고 시시한 엘리트주의 충분히 이해한다. 이제 국민 소득 3만 달러 시대다. 그까짓 여행 경비 몇 푼 안 쓰겠다고 업무를 조작해 관광을 가시나. 그렇게 사는 게 빡빡하면 자리 내려놓고 차라리 생업에나 매진하라.

같은 세금이지만 ‘삥’을 뜯기는 기분인 세금이 있다. 상속세다. 돈 버는 동안 이런저런 세금 다 내고 모아둔 걸 단지 자식한테 물려준다는 이유로 세금을 또 낸다. 대한민국은 상속세가 높은 나라 세계 원톱이다. 재산이 35억 원 정도 있으면 상속세로 10억 원을 내야 한다. 자식에게 줄 때 10억을 국가에 빼앗긴다. 국가가 합의된 공동체 유지 기구가 아니라 깡패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국민의 5%에게만 해당하는 부자 세금이라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 내가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이 받는 혜택은 어디서 올까. 이들의 돈이다. 고맙게도 이 사람들이 소득세니 건강보험료니 더 내서 내 생활이 편한 거다. 최소한 양심불량은 되지 말자.

내 돈 빼앗아 간 놈은 절대 용서 못하는 게 인간이다. 피 같은 생돈 뜯기기 싫어서 사람들은 국적을 바꾸거나 이민을 간다. 35억 원 가진 사람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국적을 바꾸면 상속세는 0원이다. 그 나라라고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 상속에서 미국은 부모 각각 1200만 달러까지 자녀에게 증여할 수 있다. 대략 300억 원까지는 상속세가 없다. 미국이 우리보다 열 배나 소득이 높은 나라인가.

얼마 전 국제투자이민 상담회사 헨리 앤드 파트너스가 발표한 자료가 있다. 순자산이 100만 달러(대략 13억 원) 이상인 사람들의 국제 이주 관련 통계다. 1등은 중국이다. 2023년 1만3500명 정도가 해외로 나갔다. 그 뒤로 인도, 영국, 러시아, 브라질, 홍콩이다. 홍콩은 1000명이 조국을 떠났다. 7위가 한국이다. 800명이 나갔다. 단순 순위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가는 이유와 국가 규모(인구)를 따져야 한다. 중국은 언제 공산당에게 재산을 빼앗겨도 하나도 안 이상한 나라다. 당연히 나간다. 홍콩도 중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 그래서 나간다. 러시아는 전쟁 중이라 그렇다고 한다.

이번에는 국가 규모를 보자. 중국은 1만3500명이 떠났다. 중국 인구는 십수억 명으로 우리의 20배가 넘는다. 이걸 그대로 비율대로 옮기면 대한민국은 1만6000명 이상이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넘버 원 등극이다. 물론 산술적인 단순 비율이니 꼭 그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얼추 비슷하긴 할 것이다. 35억 원 가진 사람이 상속세 없는 나라로 국적을 바꾸면 10억 원이 생긴다. 25억 원 가진 사람도 6억 원을 건진다. 떠나고 싶지 않겠는가.

이쯤에서 글 쓴 사람의 처지가 궁금할 수 있겠다. 필자는 상속세 납부 대상자가 아니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 오르는 걸 보면 언제까지 면제일지 잘 모르겠다. 그 때가 되면 필자 역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돈이 아까운 게 첫 번째다. 그러나 두 번째지만 더 중요한 게 ‘삥’ 뜯기는 불쾌함이다.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조국을 떠나게 만드는 나라로 대한민국을 계속 놔둘 것인가. 필자는 자랑스러운 이 나라에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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