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대한민국에서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은 술과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기업을 세우고 건실하게 성장시켜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나쁜 게 하나도 없는 과정이 가장 나쁜 결론으로 끝나는 그 이상한 프로세스를 우리는 한 단어로 상속세라고 부른다. 예전 칼럼에서도 상속세를 다룬 적이 있다. 그때가 개인의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기업의 문제다.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개인의 상속세는 개인의 슬픔으로 끝나지만 기업의 상속세는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5년 전에 100만 원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샀을 경우 수익률은 80% 정도다. 같은 돈으로 애플의 주식을 샀으면 수익률은 360%를 넘어간다. 이 이야기는 삼성이 애플보다 4배 이상 무능하다는 의미일까. 다소, 일시적으로 무능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삼성의 실력이 무려 4배나 후지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수익률이 이토록 차이나는 이유는 삼성전자의 고의에 가까운 주식 방치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히는 상속세 때문이다.

신문을 보면 "회사의 주가가 너무 높아 고민이십니까?" 따위의 요상한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주식은 회사의 가치다. 그런데 이게 높아서 고민이고 주가가 올라가면 회사가 기겁을 한다니 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대주주가 낮은 주가를 선호하는 아니, 아예 찾아 헤매는 이런 괴기스러운 현상은 주당 자본 효율성을 중시하는 증권시장의 보편적인 법칙을 무너뜨리는 한국만의 특별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다는 사실은 숫자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rice to Book-value Ratio)은 기업의 순자산에 있어 1주가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게 우리나라는 1에 가깝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업의 미래 가치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몇 년 전 1주나 어제의 1주나 변동이 별로 없다는 것으로 삼성전자 5년 치 수익률 80%의 비밀이기도 하다.

2022년 기준 미국은 이 수치가 4.2였다(애플의 수익률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대만도 2.4다. 그나마 1:1로 비율을 맞춘 삼성전자는 양반이다. 두산은 0.7이다. SK는 0.6이다. LG는 0.5다. 경제 규모나 경제의 건전성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주가는 기네스북 등재감이다.

2020년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을 때 국세청이 유족에게 부과한 상속세는 12조 원이다. 상속세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이건희 회장이 보유했던 주식으로 평가 금액의 대략 60% 정도였다. 거의 3분의 2를 떼어가는 것으로, 주식 평가가 박할수록 상속세를 내는 입장에서는 유리해지는 것이다.

주식 가치가 오르는 일이 행복이 아니라 악몽이 되는 일은 최근 한 게임 회사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넥슨 창업주 김정주 전 회장의 유족들은 그룹 지주사의 지분 30%를 정부에 물납했다. 6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였다. 졸지에 2대 주주가 된 기획재정부는 공개매각을 통해 지분을 정리할 계획이고, 후보로는 자금력이 풍부한 중국 게임회사 텐센트 등이 꼽힌다. 중소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밀폐용기 생산업체 락앤락, 가구 업체 한샘, 종자기업 농우바이오 등은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경영권을 포기했다. 열거해봐야 지면만 아깝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 OECD 가입국 중 2등이다. 여기에 최대주주주식할증평가까지 더하면 60%로 압도적인 1위다. OECD평균은 15%이고 아예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14개국이나 된다. 적당히 손보는 게 아니라 폐지해야 하는 이유다. 회사를 물려주면 상속세로 3분의 2를 떼어가는 나라에서 기업을 할 사람은 없다.

기업을 기피하니 일자리는 줄어들고 국내 주식투자자들은 외국 주식을 쳐다본다. 상속세 때문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 사모펀드에 넘어가는 상황에서 정부는 경제를 살린답시고 잔가지만 열심히 치는 중이다. 밉고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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