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남정욱

기원전 431년, 발칸 반도 남부 패권을 놓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한 판 붙었을 때다. 고래(古來)로 센 놈 둘이 싸우면 이변 없이 새우등이 터진다. 불똥은 엄한 데로 튀었고 주변의 소규모 폴리스들은 자기가 누구 편인지를 공식적으로 밝혀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때 아테네의 레이더에 들어온 게 멜로스섬이다. 이들은 지리상 아테네와 지척에 있으면서도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다. 아테네는 이들을 손봐주기로 결심하고 함대를 끌고 가 섬을 포위한다.

멜로스인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국가로 남고 싶다고 부탁했지만, 아테네는 한 칼에 이를 거절했고 멜로스인들을 깔끔하게 도륙한다. 멜로스인들의 제안에 대한 아테네의 답변은 이랬다. "여러분의 호의가 여러분의 적대감보다 더 우리에게는 더 위험하다. 여러분의 호의는 우리가 무력하다는 징표로, 여러분의 증오심은 우리가 강력하다는 증거로 우리 동맹국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테네는 관용을 베풀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아테네의 관대함이 동맹과 관망자들에게는 아량이 아니라 우유부단과 무능력으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 동맹국들은 맹주를 신뢰하지 않고 대오에서 이탈자가 발생하며 관망자들은 반란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아테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집단이나 개인 단위로 축소해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 보복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유구한 사화(士禍)의 전통을 계승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보복을 하지 않으면 지지자들이 리더를 떠나기 때문이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구속, 노무현에 대한 수사, 이명박·박근혜의 감옥행은 그 본질이 열혈 지지자들에 대한 선물이었다. 이는 동시에 내부 결속용이기도 한데 만약 지지자들의 울혈을 풀어준 그 조치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초대 이슬람 제국의 4대 칼리파였던 알리는 자신의 즉위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와 내전을 벌인다. 656년 시리아 전투의 저울추는 알리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승리가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알리는 참으로 어이없는 결정을 내린다. 무아위야와 협상에 들어간 것이다. 원래 이슬람은 무슬림 간의 살인을 금지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그건 평화 시에나 그렇다는 얘기다. 적을 섬멸할 기회를 놓친 알리 쪽 병사들은 맥이 빠졌고 단체로 알리를 만날 걱정을 하던 무아위야의 군사들은 기세가 오른다. 뭔가 자신이 없으니 알리가 협상을 시도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일로 알리는 지지자들에게서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고 내부 이탈자에 의해 암살되는 초라하고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적에 대한 단호함과 지지자들에 대한 심리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이 리더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대표는 묘한 말을 했다. 권력은 좀 잔인하게 행사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이다. 상대 진영에 대한 강하고 단호한 태도가 안팎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노골적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배워서 안 게 아니라 살면서 익힌 것이리라. 방송인 전여옥은 이낙연과 이재명을 비교하면서 둘이 게임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점잖고 나쁘게 말하면 ‘쫄보’인 이낙연은 단계마다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여가며 살아온 이재명을 어찌 해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동의한다. 그것은 지난 대선이 끝나고 자유 우익이 가슴을 쓸어내린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안 봐도 뻔하게 피바람이 불었을 테니까.

거기에 비하면 보수나 우익은 참 착하다. 매사 관용을 베푸는 것을 미덕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것도 평화시에나 통하는 얘기다. 신사를 상대할 때는 신사처럼, 깡패를 상대할 때는 그 이상으로 굴어야 후환이 없는 법이다. 정치가 무자비한 유혈 투쟁을 시스템화 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모든 것을 잃고 비극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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