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북에서는 3·1운동에 대해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의 주도로 일어난 운동이라고 가르친다. 기미독립선언서와 파고다공원, 민족대표 33인 등에 대해서도 대충 언급하긴 한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민족대표 33인 중에 김형직이라는 이름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의아했다.

학자들은 김형직이 평양에서 3·1운동에 동참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3·1운동 중심 인물 대다수가 기독교인이고 김형직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김형직이 공부한 평양숭실중학교는 기독교 학교였고 독립정신도 높았다. 이 학교가 서울에 있는 숭실대학교 전신이라는 것도 남한에 와서 알았다.

그러나 김형직이 최대의 민족지도자였고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조선국민회’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았다. 조선국민회를 김형직이 조직했다고 했는데, 실제는 김형직이 아니라 장일환라는 인물이었다. 장일환은 1914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용만을 만난 뒤 평양을 중심으로 조선국민회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1918년 일제에 발각되어 주요 인물들이 체포됐다. 당시 조선국민회 주요 인물 명단을 봐도 배민수·김병두·김석현·이병균 등이 나오는데 김형직 이름은 없다. 다만 이 인물들 거의가 평양숭실중학교 출신임을 고려할 때 같은 학교 출신 김형직도 조선국민회 성원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김형직이 평남 강동군 명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당시 상부의 지시로 몇몇 학부형들을 봉화산에 모이게 하고 조선국민회에 가입시킨 사실은 있다고 한다. 조선국민회 사건으로 체포돼 평양감옥에서 고초를 당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에서 가르치는 3·1운동과 조선국민회에는 김형직의 지위와 역할이 너무 많이 과장됐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큰 역할을 한 다른 독립운동자들의 이름은 묻히거나 비하됐다. 김일성 일가 우상화를 위한 것이다.

언젠가 필자가 3·1운동 기념행사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인사가 거기 참석한 탈북민들에게 북에서는 유관순 열사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물었다. 필자는 북에서 알았던 내용을 소개했다. 그런데 다른 탈북민들은 유관순을 전혀 가르치지 않아 모른다고 대답했다.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유관순은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고 관심이 적으면 모르는 존재다.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다. 통일 지우기에 나선 북한이 이제 김일성 혁명 역사교과서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다. 현재 교과서에는 김일성·김정일 업적 중 통일에 관한 부분이 많다. 이것을 어떻게 정리할지, 또 어떤 거짓말을 꾸며내야 할지 골치아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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