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이호선

"교수님, 제가 스터디 그룹 친구 서너 명 데리고 수강하려는데 대신 수업은 1/3 정도만 해 주시고, 나머지 시간은 저희가 ‘인강’듣고 시험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실 수 있을까요?" 수강인원 미달로 수차 폐강을 경험했던 교수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할 수 없이 비굴한 ‘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고객’ 마케팅을 위해 A+학점 보장이 필수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어느 로스쿨 교수의 진행형 경험담이다.

필자는 지난해 8월 23일 법학전문대학원 출범 15주년을 맞아 개최한 ‘법학교육의 위기, 이대로 좋은가?’라는 학술회의에서 발제를 한 바 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국회를 통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한 곳들을 제외한 18개 로스쿨 중 2012년부터 2023년까지 11년간 누적 폐강과목 수가 100여 개가 넘는 학교가 7군데나 됐다. 사립대 로스쿨은 평균 102과목, 국·공립대는 164과목이 폐강됐다. 이쯤되면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은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욱 참담한 건 교육부의 태도였다. 로스쿨 입학 기준이 되는 법학적성시험(LEET)이 4년제 대학 교육과정의 성취도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변호사시험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정보공개를 요구했더니 돌아온 답은 교육부는 ‘그딴 거 없음’이었다.

이런 교육부의 무책임은 의대 입시 정원 증원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사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미래 인력자원의 배분과 양성의 큰 그림을 그리고 조율해야 할 교육부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 장관은, 한 해 3058명인 의대 입학 정원의 65%에 해당하는 2000명을 한꺼번에 늘려도 과연 의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의 질적 수준 유지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국가백년지대계의 관점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이공계의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의대로의 과잉 쏠림을 막도록 기획·조율하는 것은 보건복지부 장관보다 한 직급 높은 교육부총리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육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무책임과 무소신이다. 의대생들이 동맹휴학 등 집단행동을 하겠다고 하자 학사관리 엄격 준수 운운 타령의 공문을 보내는 것 외에 교육부가 뭘 하고 있는지 듣거나 본 적이 없다. 하긴 공문 발송이 장기(長技)인 교육부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부총리급 부처이면 보건복지부 뒤에 숨어 그 뒤치다꺼리나 하지 말고 이번 의대 정원 규모에 대해어떤 입장과 대안을 갖고 있는지 당당하고 조리있게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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