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이호선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2021년 이후 태어난 70명의 직원 자녀 1인당 1억 원씩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된 세금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현안으로 대두되자, 부영그룹은 해당 출생아에게 지급하는 ‘증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직원에게 근로소득으로 추가 인정되어 부과되는 소득세 부담보다 훨씬 적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여세를 낸다고 해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인구재앙의 현실에서 한 기업인이 나서서 뭐라도 해 보겠다고 사재를 터는데 과세당국이 손을 벌린다는 건, 국가가 저출산 극복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30년까지가 반전의 마지막 찬스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다." ‘차원이 다른 저출산 정책’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이 말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2023년 6월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한 말이다. 이런 일본도 2022년을 기준으로 우리의 출산율 0.78명(지금은 0.6명대로 떨어졌다)보다 높은 1.26명이다. 우리야말로 ‘차원이 다른 저출산 정책’을 해야 한다. 이 점에서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필자는 2011년 <천부기본자산권으로서의 생애기반자산 도입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낸 바 있다. 이 논문을 통해 대한민국 신생아 한 명당 국가가 1000만 원씩 적립했다가 성인이 될 무렵 교육이나 주택구입 등의 자금으로 주자고 제안했다.

제목에 천부(天賦)가 들어간 것은 신생아 개인 몫은 부모에 대한 지원금이나 장려금과 성격이 다름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이 기금은 부모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 몫의 국가펀드이다. 국가가 운영하고 성인이 되면 개인에게 주되, 그 전에는 자녀가 사망해도 부모에게 상속되지 않는다. 천부인권에 대응하는 천부물권인 셈이다. 용어가 좀 생뚱맞아 보여도, 이미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천부채무(天賦債務)를 지고 있다.

한 사람이 평생 국가에 내는 세금과 준조세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빼는 이른바 ‘세대간 회계’를 하면, 우리 신생아들은 태어나는 순간 채무를 상속한다. 원죄와도 같은 이 사회적 상속채무를 미리 덜어주기 위한 조치를 하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마땅한 의무이자 정의의 요청이다.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차원이 다른 저출산 해결 정책’이기도 하다.

생애기반자산은 균등한 출발, 활력넘치는 경쟁, 안락한 노후라는 국가 구성원들 생애 디자인의 첫 출발이다. 당장 현금 지급이 되지 않아도 되는 까닭에 국가 재정 부담이 적고, 세대간 및 계층간 통합 기능이라는 장점도 있다. 이중근 회장이 쏘아올린 공이 ‘천부적 생애기반자산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