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효식
엄효식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일반적으로 방산매출과 방산수주(受注)라는 두 영역이 혼재돼 있지만, 여러가지 숫자들이 실감나도록 발표 및 표현되고 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방산기업 매출은 20조6502억 원으로 추산된다. 사상 처음으로 매출 20조 원을 넘겼을 뿐만 아니라 전년도 달성했던 신기록(16조8300억 원)을 1년 만에 경신했다.

2023년도 국방예산이 약 57조 원이었고 그 가운데 무기개발 등에 지출되는 ‘방위력 개선비’가 16조9000억 원이었음을 고려한다면, 국내 매출의 최대 상한선 즉 국방예산을 뛰어넘는 매출을 달성한 것이다. 국방예산에 의존하던 내수 중심의 매출이 수출영역으로 상당히 확대됐음을 증명한 것이다.

방산 수출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3~4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기업들의 방산 수출액은 2조 원대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수출액은 2배 이상 상승한 5조927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과거 20%대에서 지난해 33%까지 상승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지역 위기 등에 따른 무기 수요가 증가하고, 대한민국 무기체계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2023년 방산수출 계약수주는 약 16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여전히 10위권의 수출계약 실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방산수출 수주액은 2022년의 약 20조 원보다 줄어 아쉽지만 수출대상국이 12개국, 주요 수출 무기체계는 12개로 모두 지난해(4개국·6개)보다 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러한 성과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방산기업들이 첨단기술과 고품질의 방산제품을 생산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치열한 수출마케팅에 집중한 덕분이다. 방산기업 임직원들은 당연히 칭찬과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2024년 국방예산이 약 59조6000억 원인데, 그중 방위력 개선비 즉 무기체계 개발을 위한 예산이 약 17조 원에 달한다. 국내 방산기업들은 이러한 국방예산을 기반으로 올해도 매출을 높여갈 것이다. 당연히 수출을 통한 매출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건 해외건 수주계약을 하는 것은 기업의 미래 존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의 매출만 바라보고 안주하다보면 2~3년 후 일거리가 없어지고 사업장에는 찬 바람만 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계약수주를 했다고 해서 곧바로 기업의 매출로 전액 반영되는 것이 아님은 고려해야 한다. 2022년 폴란드 방산수출 수주액이 약 15조 원이었지만 실제 우리 기업의 통장으로 입금된 매출은 약 5조 원 내외였다. 계약수주는 상당기간 동안 연차적으로 기업의 매출에 반영될 것이다.

이처럼 최근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국내외 계약수주와 매출액 두 부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국민적 자부심까지 충족시키고 있다. 이렇게 ‘효자산업’ ‘자부심 산업’인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박정희 평전>(전인권 저)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4월 19일 ‘자주적 군사력 건설’을 지시하면서 설정된 네 가지 원칙이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첫째, 자주국방을 위한 군사전략의 수립과 군사력 건설에 착수. 둘째, 작전지휘권 인수 시에 대비한 장기 전략 수립. 셋째, 중화학공업 발전에 따라 고성능 전투기와 마사일 등을 제외한 주요 무기와 장비의 국산화. 넷째, 장차 1980년대에는 이 땅에 미군이 한 사람도 없다는 가정 하에 독자적인 군사전략·전력증강 계획을 발전시킬 것이 핵심내용이다.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각 군에서 건의한 군 장비 현대화 계획안을 조정 및 보완해 1974년 1월 16일 합동참모회의에서 의결했다. 국방부는 이를 토대로 제1차 전력증강계획(율곡계획)을 수립, 박정희 대통령 재가를 받아 최초의 자주적 전력증강계획을 확정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방위산업 발전의 시초가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상황이지만, 네 가지 원칙은 지금의 현실에 대입을 하더라도 유념할 부분이 많다. 어쩌면 ‘절박함’이라는 차원에서 더 깊이 공감해야 할 부분도 있다. 우리 방산기업들의 해외 수출 증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폴란드가 최근 차관 지원 관련 난감한 요구를 하고 있어 2차계약이 다소 지연되고 있다. 폴란드 신임 총리 투스크는 최근 프랑스와 독일을 방문, 유럽이 스스로 방산능력을 1년 이내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독일 라인메탈사는 포탄 생산공장을 신규 착공하는 등 유럽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방산역량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이룩한 놀라운 성과는 가만히 앉아서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방위산업 발전을 언급하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서 현재와 미래를 직시하는 게 최상의 방산전략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