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
정기수

"정치 입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도움을 줬고, 정치 기술은 김종인 전 위원장에게 배웠다. 정치 철학은 유승민 전 의원과 공유하고 있다. 최근엔 오세훈 시장에게서 정치 매너를 배웠다." 36세 이준석이 제1야당 대표가 된 2년 반 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83세 정치 거간꾼’ 김종인에게서 정치 기술을 배웠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본인의 정치 행태(배제·낙인·싸움)에 대해 비판을 주로 받는 사람이 그 기술을 배운 대상을 밝히다니, 과감하고도 도발적이다.

김종인은 이준석의 정치적 조부(祖父)다. 둘은 서로 아주 존중하는 사이다. 김종인은 일찌기 이준석을 대통령감으로 찍었고, 최근에도 차기 대선에서 그가 한동훈과 맞붙을 수 있다는 식으로 띄웠다. 이준석도 이 노정객을 끔찍히 모신다. 지난 대선 때 그를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옹립했으나 "후보는 배우, 감독인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라는 망언을 해 윤석열 후보에게 잘리도록 했다.

김종인은 통합신당에서도 이준석과 함께 공천 전권을 휘두르고 싶어 ‘이낙연 아웃’(광주 출마로 낙향 유도)을 공관위원장 수락 전제조건으로 걸었다. 이낙연-이준석 빅텐트 파열 관련 ‘김종인 기획설’이다.

4개 탈당 정파가 설 연휴 직전 정당 보조금(6억+α)도 챙기고 여론 밥상에도 올릴 겸 허겁지겁 합친 것이 통합신당이다. 공동대표 이준석의 김종인 할아버지 상왕 작전은 이낙연 측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어진 이준석의 ‘선거-정책 전권’ 탈취 쿠데타에 이낙연이 폭발, ‘위장 결혼’은 11일 만에 깨졌다.

김종인은 정치적 손자 이준석에게 뭘 어떻게 가르치고 있기에 그가 가는 곳마다 시끄럽고 부서지는 것일까? 이준석과 좋은 관계를 맺은 유명 정치인들은 서두 인용문 속 인물-박근혜·유승민 그리고 김종인 등이 거의 전부다. 그와 함께해서 망하지 않기는 정말로 어렵다.

같은 당에서 한솥밥을 먹은 20~30세 연상 주요 인사들과도 예외없이 치고받았다. 옛날 바른미래당 대표 손학규를 ‘정치 폐인’으로 매장시켰고,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는 ‘병신’, ‘안철수씨’라고 불렀다.

여권에도 그와 반목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윤 대통령이 그 명단의 첫 번째이고 장제원·정진석·권성동·조수진·배현진·인요한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그가 대결하는 상대는 언제나 같은 편이다. 한 번도 문재인, 이재명에게 대든 적이 없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내부총질러’다.

급조 통합신당이 찢어지는 것으로 결말이 나자, 이낙연에게 "내가 뭐랬나?"라는 여의도 평론가들의 힐난이 빗발친다. 이낙연이 이준석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준석을 생애 최초로 가까이서 봤을 때 그의 기이한 행동, 버릇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기함했을 것이다.제3지대 빅텐트 설치를 위해 이낙연과 만났을 때, 이준석은 대화 도중 대답은 건성으로 하면서 핸드폰 화면에 더 열중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랩탑을 꺼내 놓고 계정 관리를 시작하더라는 얘기가 정가에 회자된다.

이준석은 예전에 자기 당 대선 후보에게도 그렇게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남의 당 경선 탈락자를 어떻게 대했을지는 능히 상상이 가지 않나? "더구나 그들은 통합을 깨거나 저를 지우기로 일찍부터 기획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 이낙연의 결렬 선언 속에는, 이준석이 던진 그런 ’싸가지‘ 폭탄을 되돌려주고자 했던 분(憤)이 묻어 있다.

진심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준석이 일단 납작 엎드렸다. "지나친 자기 확신에 오만했던 것은 아닌지, 가장 소중한 분들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했던 것은 아닌지"라며 ‘성찰’이라는 말을 읊조렸다.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이준석의 덫에서 빠져나온 이낙연은 호남과 민주당 비명계 공천 탈락자들과 세를 다시 규합하게 될 것이다. 이준석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에 우쭐, 이낙연을 너무 우습게 보고 김종인과 함께 ‘전권 과욕 기술’을 부리다 역습을 당했다. 마이너스 4선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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