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현
이태현

사람이든 단체든 제품이든 경쟁 없이 고이게 되면 언젠가는 부패하거나 도태된다. 위대한 시저가 그랬고 나치가 그랬으며 영원할 줄 알았던 코닥(Kodak)이 그랬다. 다행히 1990년대부터 피 튀기는 경쟁을 통해 인류에 엄청난 혜택을 준 두 회사가 있다.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중앙처리장치)의 제조사인 인텔과 AMD(Advanced Micro Devices)이다. 초창기 AMD는 인텔의 2차 공급 업체였다. 그렇기에 AMD가 초반부터 인텔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AMD는 우수한 성능과 호환성의 제품을 개발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렇게 세계 1위 인텔의 그늘에서 고진감래의 마음으로 갈고 닦던 AMD는 2000년 인텔의 성능을 앞질러 버린다.

언제나 인텔의 아류 취급만 받던 AMD가 세계 최초로 초당 10억 번의 명령어 처리가 가능한 1GHz 속도의 K7 애슬론을 발표한 것이다. 경쟁자가 없던 인텔은 정체됐고, 시장의 관심은 순식간에 AMD로 몰렸다. AMD는 CPU 시장의 2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여전히 절대적 시장 강자였던 인텔을 일부나마 따라잡았다. 하지만 인텔 역시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2006년 인텔의 코어 2 듀오인 콘로가 AMD 애슬론의 기세를 꺾으며 본격적인 반격에 성공했고, AMD의 성장세가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인텔은 10년간 개인용 CPU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

2017년, 기술개발에 매진해온 AMD는 경쟁력 있는 가격과 성능을 무기로 다시 인텔을 공격했다. AMD의 부활을 알리게 된 ‘라이젠’이 발표되며 10년간 고였던 물에 다시금 흐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신뢰도는 단기간에 회복되진 않지만 발표한 성능을 단번에 입증하며 왕좌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인텔 천하였던 CPU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데 성공한다. 라이젠 출시 이후 5% 미만이었던 AMD의 CPU 시장의 점유율은 30%에 가깝게 회복하면서 AMD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인텔은 라이젠 돌풍을 코어X 시리즈와 8세대 카피레이크로 간신히 막아 세웠다. 라이젠의 등장은 한동안 발전 없이 머물러 있던 CPU 시장에 큰 변화를 이끌었고 기술 발전에 가속을 더했다. 그렇게 CPU 시장은 무한 경쟁을 통해 지금의 intel i9 14900k와 AMD의 Threadripper 7980X에 이르렀다.

2015년 우리나라도 ‘국산 CPU 코어 상용화’를 목표로 대규모 투자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2017년 95억 원의 예산 투입을 끝으로 사업이 종료됐다. 최초 5년간 350억 원을 투자하려던 목표에 비하면 꽤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여전히 세계 CPU 시장 70%를 장악하는 인텔, 그리고 그 인텔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AMD가 있다. 최근 GPU(그래픽처리장치)를 대체하는 NPU(신경망처리장치) 국산화 도전이 새롭게 시작된 만큼, CPU 국산화 역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4차 산업 시대 대한민국이 도전할 가치도, 능력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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