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오

평화는 전쟁이나 폭력, 갈등, 분열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간단하게는 전쟁의 반대말 정도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워낙 추상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사용하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르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평화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 없이는 북한이 말하는 전쟁과 평화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명확히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평화에 대한 정의다. 이들의 평화는 공산주의 계급투쟁과 세계혁명론에 기초한 것이다. 전 세계에 자본주의가 전멸하고 완전한 공산화가 이루어졌을 때를 평화로 본다. 이런 시각이기 때문에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폭력의 사용, 즉 인민전쟁·내란·전복 등 평화를 깨는 행위는 정당화된다. 심지어 이러한 폭력 행위를 ‘정의의 전쟁’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둘째,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를 보는 시각이다. 북한은 모든 전쟁의 근본은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이 완전히 괴멸되어야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북한의 시각에서 미국은 열핵폭탄을 가진 국제 깡패다. 이를 토대로 제국주의를 펼치며 특히 일제시대에 이어 지속적으로 남한을 식민지배하고 있다. 때문에 이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남조선혁명 사업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들을 남한에서 철수시켜야만 되는 것이다. 휴전 이후 지금까지의 수많은 남북대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상수로 등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평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숨은 목적이 다르다. 이는 일종의 용어혼란 전술이기도 하다. 하나는 전략적 차원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전 세계가 공산화된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상대와의 경쟁에서 한층 유리하거나 또는 아주 불리한 경우 사용하는 전술적 차원에서의 평화다.

유리할 때 평화라는 말을 사용한 경우는 1972년 소위 ‘7·4남북공동성명’ 때였다. 북한이 동남아에서 전개되는 월남전 상황을 보며 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공산주의가 승리하고 있다고 여겼던 때였다. 당시 북한이 제시한 조건은 남북평화협정 체결, 불가침조약체결,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일종의 평화공세였다. 남한 내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봉기라도 기대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불리할 때 사용했던 대표적 예는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였다.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전문 200여 글자 속에 사용된 평화라는 단어는 모두 ‘평화 통일’, ‘평화 보장’이었다. 이때 보여줬던 북한의 적극적인 태도는 1990년 동독의 멸망과 1991년 소련의 해체라는 공산주의 위기상황 속에서 나온 전술상 수세적 평화였던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평화라는 단어는 ‘자본주의 잡사상’이라고 불리는 ‘자유’라는 단어와 함께 찾아보기 어려운 용어다. 일찍이 김일성은 평화주의에 대해 ‘전쟁 일반을 반대하고 무원칙한 평화를 설교하는 부르조아 사상 조류이다. 제국주의 존재 자체가 전쟁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며 인민들이 평화를 염원하는 것을 악용하는 사조’라고 비판했다. ‘제국주의자인 미국과 평화를 말하며 공존하려는 것은 구걸하는 행위이며 노예적 굴종’이라고 했다.

평화란 전쟁·폭력·갈등을 배척하며 상대를 인정하는 ‘공존’을 기본으로 한다. 북한에게 평화 공존이란 것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남북한 충돌설이 나오는 가운데 무조건적인 평화를 말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이 입에 담고 있는 평화가 부디 북한이 말하는 평화와 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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