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박재형

한국에서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격해지며 환자와 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전반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지만, 의사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나고, 정부는 엄정 대응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선 내세우는 이유는 의대 입학 정원이 늘면 우수 학생의 극심한 의대 쏠림 현상이 더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순수과학 등 이공계가 아닌 의대로 몰리면서 과학기술의 미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한다.

이는 지나치게 단기적이고 단순한 판단이다. 정부 정책은 의대 정원을 엄청나게 늘려 누구나 의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의대에 입학하는 우수 학생의 수가 일부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의사 공급이 늘면 우수 학생들의 이공계 진출이 늘어나며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의 핵심은 바로 돈이다.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으로 의사가 많아지면 자신의 선배들만큼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엄청난 업무 압력을 버텨내는 것도 나중에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풍요에 대한 기대가 있어 가능하다.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점수 따라 번호표처럼 의대로 향하는 세태 또한 다른 이공계 전공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입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의대 증원 정책은 장기적으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전공의들의 우려처럼 의사가 많아지고 상대적 수입이 예전만 못해진다면, 지금 같은 의대 쏠림 추세는 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공계의 많은 우수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희망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고, 이들은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이끌 인재로 자라날 것이다.

한국과는 다소 다른 문화적·교육적 차이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적어도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생은 무조건 의대를 간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도 우수 학생들에게 의대는 분명 인기 있는 선택지 중 하나지만, 컴퓨터과학을 포함해 소위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의 다양한 분야도 인기가 많다.

한국에서도 의대를 졸업하려면 상당한 경제적·시간적 투자가 필요하지만, 미국의 경우 더 길고 어려운 단계 특히 엄청난 학비 지출이 요구된다. 따라서 졸업 후 의사가 되고 높은 임금을 받아도 학자금 융자 상환에 쩔쩔맨다. 반면 의대 대신 STEM 분야를 선택한 학생들은 장학금 등 다양한 지원 정책과 양질의 일자리 덕분에 졸업 후 의사 부럽지 않은 경제적 여유를 누린다.

미국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하버드대·캘리포니아공대 등 최상위권 대학 컴퓨터과학 전공 졸업생은 졸업 후 4년 동안 평균 24만 달러, 3억20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같은 전공의 우수 학생들이 이 정도의 연봉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의대 쏠림 때문에 미국 등으로 빠져나가던 과학기술 인재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들에 대한 대우 역시 달라질 것이다.

의대 증원 정책은 장기적으로 압도적 고소득이라는 의사직의 매력을 약화해 극단적인 의대 쏠림 현상을 없앨 수 있다. 의대에 쏠리던 우수 학생들이 다양한 과학기술 전공을 선택해 한국 과학기술 발전의 대들보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 누군가는 한국에 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줄 가능성도 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