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량
강량

머릿속에 이미 답을 정하고 덤벼드는 좌익 지식인들은 가련하리만큼 집요하다. 당대 유명 철학자의 현실 분석 논리에 묻어 자신들의 좌익 논리를 끼워넣는 데 참 탁월하다. 최근 독일-프랑스 간 보불전쟁 후 왕과 재상 중심 정치사를 탈피하고 역사 연구를 파편화시켰던 프랑스 아날학파의 번역서들이 넘쳐난다.

프랑스 최고 경제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 Braudel)의 방대한 3부작 (<일상생활의 구조> <상업의 수레바퀴> <도시가 지배하는 유럽세상>)이 총 6권으로 번역 출간됐다. 그런데 번역판 제목이 요상하다. 브로델이 부제로 사용했던 ‘문명과 자본주의’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로 둔갑해 통일된 번역 책 제목이 됐다.

브로델은 자본주의에 대한 호불호를 언급한 적이 없다. 다만 15세기부터 산업혁명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사 발전동인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브로델의 업적은 인구통계사학의 위대한 보물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동시대를 살아냈던 인간의 생각·감정·태도·교통과 기후·주거와 음식·지리와 국가권력·계층문제·시장과 국제교역 등을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다만 시장경제의 마지막 단계로 독점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이 가설 하나를 좌익들은 붙잡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집요한 좌익들이 로마 이후 근대까지 방대한 사회경제사를 다룬 조르쥬 더비(G. Duby)의 <사생활 역사>는 왜 번역하지 않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소설가 이병주는 인간의 역사의식 속에 햇빛·달빛·별빛 3가지 속성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태양 아래 정사는 조금씩 바래고, 어스름 달빛 아래 역사는 신화를 만들며, 몽상적인 별빛 아래 역사는 소설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인간의 역사는 항상 휘어져간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에게 마르크스의 역사결정주의는 한마디로 소설이다.

문재인의 음흉한 달빛 굿판을 이재명이 뭉개버리고 있다. 국민의힘의 운동권 청산 선거전략에 본의아니게 이재명이 일등공신이 됐다. 4월 총선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이 희대의 정치기인이 좌익들로 이미 휘어진 대한민국 역사를 정상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 같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