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이애란

북한은 자본주의 문화를 ‘수정주의 날라리 바람’이라며 엄격히 차단해왔다. 필자가 북한중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같은 반 남학생 한 명이 러시아에서 출판한 <인체해부학>이라는 의학도서를 가져와 남학생들과 함께 봤다. 책에는 인체 관련 사진을 비롯해 성병과 매독, 성형수술 등에 대한 의학적 설명이 있었다. 학교당국은 이 책이 수정주의 날라리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며 책을 압수했다. 그리고 같은 반 학생 전체를 한 달 동안 밤 10시까지 집에 보내지 않고 비판서를 쓰게 했다. 책을 보지도 못한 학생들까지 추운 교실에서 비판서를 쓰느라 고생을 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수정주의 날라리 바람이 문제가 아니다. 최근 북한당국은 한류 열풍이 만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러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16~17세 북한 청소년들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한 이유로 공개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됐다고 한다. .

최근 프리덤조선이 입수한 북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지난 시기 사회의 준비되지 못한 일부 주민들과 부문, 단위들에 국한되어 있던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적대행위들은 지금 사회생활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여 우리의 내적 동력을 약화시키고 전진을 가로막는 주되는 장애로 되고 있다. 이제는 반사회주의, 비 사회주의 행위들의 위험성이 도수를 넘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위험계선에까지 이르렀다. 다시 말하여 피로써 쟁취한 혁명의 전취물과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이고 요람인 사회주의 제도를 고수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갈림길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자료는 지난해 어느 도시에서는 9000여 명의 고급중학교 학생들이 안전기관에 찾아가 불순 녹화물을 본 사실을 자수했으며, 3000여 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불순 녹화물이 들어있는 기억기(USB)를 자기가 속한 조직에 바쳤다고 밝히며 체제 위기를 자인했다.

북한 내부문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한류는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으며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학대학 교과서를 돌려본 것까지도 수정주의 날라리 바람이라고 난리치던 북한이니, 한국과 국제사회의 자유분방한 문화에 대해서는 아마 경기를 할 정도로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청소년과 주민들이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더 많은 문화 콘텐츠를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북한 자유화를 앞당기는 길이라는 것을 북한의 내부문서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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