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이애란

1997년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왔을 때, 우리를 칭하는 명칭은 ‘귀순자’였다. 그런데 조사를 마치고 사회에 나오니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또다른 명칭이 있었다. 여기저기 불려다닐 때는 탈북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귀순용사’라 부르기도 했다.

귀순용사라고 불릴 때는 좀 당혹스러웠다. 체제가 다른 대한민국을 찾아오기는 했지만, 필자에게 대단한 정치적 신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의 탈북 이유는 아버지의 과거 정치적 활동에 대한 연좌제로 가족 전체가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북한 주민들은 북한 체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강요당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동기나 용기 같은 것이 없다. 그래서 귀순용사라는 호칭은 너무 과하고 생각했다.

법적으로는 북한이탈주민인데 사람들은 이 단어가 길다고 탈북자라고 부르다가 ‘놈 자(者)’가 들어갔다고 탈북민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에서 갑자기 탈북자라는 호칭이 이미지를 나쁘게 해서 정착에 도움이 안된다며 새터민이라 부르라고 했다.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새터민 대신에 탈북민 사용이 늘었다. 좌익에서는 북향민이라고 부르고 일부는 통일민, 자유이주민, 자유민 등등 별의별 호칭들이 다 탄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배경주민’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또 만들어진다고 한다. 당연히 탈북민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북배경이든, 북한 이탈이든, 어떤 호칭을 갖다 붙여도 탈북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제발 이런 부차적인 문제로 본질을 흐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탈북자들은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을 탈출한 사람들일 뿐이다. 더 이상 탈북자 호칭으로 국력이 낭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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