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이호선

전문가 몇이 모여 저마다 자기 직업이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고 자랑했다. 외과의사가 말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하와를 만드신 것에서 인간이 시작됐지. 그러니 의사만큼 오래된 직업은 없네." 그러자 토목기술자가 말했다. "틀렸어. 천하의 물을 한데 모으고 뭍이 드러나게 한 일이 그보다 먼저였지. 그건 우리 같은 토목장이의 일이지." 전기공이 가소롭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그보다 먼저는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하셨지 않나. 토목보다는 전기가 먼저였네." 마지막으로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빛이 있기 전에 혼돈과 공허, 흑암이 있었지. 도대체 자네들은 그런 걸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그 주장에 다른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 유머는 틀렸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카오스의 창조자는 정치판사들이다. 항소심에서 2년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조국이 비례전업 정당을 창당하여 여론조사 상으로는 두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1심에서 3년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황운하도 이 당에 합류하여 나름 당선권 순번을 받을 모양이다. 또 저쪽 어디에서는 옥중에 있는 피고인 송영길이 ‘소나무당’을 만들어 대표가 되고, 옥중 출마를 선언했다. 대한민국 정치가 희화된 비극적 혼돈에 휩싸여 있다.

이 혼돈과 공허,흑암의 배후에 정치판사들에 의해 지연된 재판이 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김우수)가 피고인 조국에게 1심과 같이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재판 사보타주에 가까운 1심 재판이었다. 피고인 조국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오는 데 3년 2개월이 걸렸다. 이 사건을 맡았던 ‘우리법 연구회’ 출신 김미리 판사는 재판을 질질 끌다 나중엔 3개월 휴직까지 신청했다. 김 판사는 황운하 피고인이 관련돼 있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맡았는데, 공소제기 후 15개월간 한 번도 공판을 열지 않았다. 이런 김미리 판사를 김명수 코트에서는 2021년 2월 정기인사에서 통상적인 인사 관행을 깨고 유임시켰다. 위 사건들을 계속 끌어안고 가도록 한 것이다.

혼돈 만들기에 하급심만이 동원된 것이 아니다. 형사재판과 징계절차가 진행 중인 까닭에 사표 수리가 안 되었던 황운하가 현직 경찰 신분으로 출마하자,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상 사퇴 시한인 90일 전에 사표를 냈다면 그것으로 출마 자격은 충분하다고 해석해 ‘황운하 판례’를 만들어 주었다. 이 과정에 제2의 권순일처럼 비루한 자는 없었을까. 이 판결 덕분에 조국 예찬론자인 피징계자 전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도 현직 신분으로 이번 총선에 나올 예정이다.

질서의 수호자들이 창조한 난맥상이다. 예수의 말을 빌자면 이렇다. "화 있을진저, 정치판사들이여, 너희는 정의의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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