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이호선

정부가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에 대해 전액 비과세하기로 했다고 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 3월 5일 이런 입장을 밝혔고, 7월에 발표될 세법개정안에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세수 부족에 따른 고민이 적지 않았을 정부가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을 내린 것에 박수를 보낸다. 인구절벽이라는 말로도 국가소멸 심각성의 반의 반도 표현하지 못할 지금의 사태에서,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도록 하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이상의 국정 우선순위는 없다.

그런데 속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방향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자녀가 아닌 근로자에게 지급할 때만 비과세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단견이다. 출산의 주체가 부모인만큼 그들에게 목돈을 주면 자녀를 낳을 유인동기가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회 전체적인 역기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1억 정도의 장려금을 줄 수 있는 기업에 다니는 젊은 부부들에게는 기쁜 소식이겠지만, 그만한 여력이 없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는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 출산장려금 나오는 번듯한 직장 다니지 못할 거면 아이도 낳지 말자는 자조가 번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출산동기 감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개별 기업에 맡겨진 이상 회사 형편에 따라 지속가능하다는 보장도 없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형평의 문제가 대두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설령 지속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또 전체 국민 사이에 형평성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왜냐하면 세금으로 들어와야 할 돈, 다시 말해 이 사회 어딘가에는 쓰여져야 할 돈이 특정 그룹만을 위한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국가로부터 면세(免稅)되는 돈이라면, 그 돈의 성격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세금조차 피해가는 이 ‘특권 현금’은 부모의 몫이 아닌 신생아의 몫이 되어야 하고, 어느 기업 근로자의 아이들만이 아닌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의 것이어야 한다. 기업들이 출산장려금 명목으로 내는 돈을 비과세로 한데 모으고, 여기에 국가 재정도 보태어 매년 태어나는 대한민국 신생아 개인 몫으로 1/N의 보편적 배당을 하되, 성년이 되기까지 국가가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젊은 부부들에게는 "자기 먹을 건 제가 갖고 태어난다"는 생각을 심어주어야 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아이들에게는 적어도 자신이 사회에 나갈 때쯤이면 ‘비빌 언덕’은 갖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초저출산의 깊은 뿌리 중 하나인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는 근본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세제(稅制)라는 기술적 접근을 탈피, 출산장려금을 미래세대 기탁금으로 보는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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