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여자친구, 남자친구라는 말이 처음에는 귀에 거슬렸다. 어린이집 다니는 애들까지 그 말을 입에 담는 걸 보고는 기가 막혔다. 북에서는 이성친구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고, 남녀가 친구처럼 가깝다면 이미 연인 관계다. 원래 북에서는 동성끼리라도 아주 가까운 사이 아니면 친구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필자가 남한에 온 초기,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라는 말을 들으면 조만간 결혼할 사이거니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북에서는 연인 사이도 남친·여친 하지 않고 친한 남자·친한 여자 혹은 애인이라고 한다.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결혼까지 가는 관계로 여긴다. 헤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정말 피치 못할 조건이나 사정이 생겼을 때다. 당연히 이성을 가까이할 때 신중하게 된다. 관계가 좋게 발전해 결혼까지 한다면 축복받을 일이나 그렇지 못하면 도덕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마음은 착한데 얼굴이 좀 별로인 처녀가 있었다. 직장에서는 일 잘하는 혁신자였는데, 같은 직장 총각과 눈이 맞아 돌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몇 달 뒤 총각은 얼굴이 예쁘지 않다며 처녀를 멀리했다. 처녀는 직장 당 조직 책임자에게 찾아가 억울함을 하소연했고, 총각은 불려갔다. 총각은 노동당 후보당원이었다. 후보당원은 1년간 검증을 거쳐야 정당원이 될 수 있는 처지다. 당 조직 책임자는 여자를 책임지지 않겠으면 당에서 제명될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제명되면 애초 입당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출당자는 앞길이 막히고 복당은 몇 배 더 어렵다.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결혼한 후에는 잉꼬부부였다.

북한에는 여전히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통한다. 유치원 시절까지는 함께 어울려 장난을 치지만 학령기부터는 한 학급에서 공부해도 남자 따로 여자 따로 논다. 어떤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떠드는 남학생이 있으면 "왜 여자처럼 재잘거리냐"며 벌로 여학생들 가운데 앉혀놓기도 한다.

남녀 구분을 엄격히 하기에 남자 중학교, 여자 중학교가 따로 있던 시기도 있었다. 학생 수가 적은 병설 학교는 남자 학급, 여자 학급 따로였다. 그러다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이 학교 운영에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나오면서 합쳤다. 남학생들은 장난이 심하고 청소도 잘 하지 않아 교실이 어지럽고 비품도 손상된 것이 많았다. 반면 여학생들은 깔끔했다. 합친 후에는 모든 교실이 깨끗해졌다.

역시 남자는 남자에게 적합한 역할이 있고 여자는 여자에게 적합한 역할이 태생적으로 따로 있는 듯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필자는 지금도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라는 말이 좋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