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코로나 대유행을 앞두고 태국 방콕에서 벌어진 중국 응원 시위. 코로나를 이유로 중국인 입국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 시위였다. /연합
2020년 2월 코로나 대유행을 앞두고 태국 방콕에서 벌어진 중국 응원 시위. 코로나를 이유로 중국인 입국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 시위였다. /연합

중국 공산당의 패권전략 ‘초한전’은 "목표국가의 체제는 그대로 두되 알맹이는 철저히 친중화 한다"는 방식을 쓴다. 따라서 "셰셰" 논란을 일으킨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 등 범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우리나라는 국회에 의해 ‘합법적’으로 친중위성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태국의 사례를 보면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반공국가’였던 태국, 1973년 공산 내전 진압한 뒤 中에 ‘무역’ 제안

케리 거샤넥 대만국립정치대 방문교수는 책 ‘정치전(Political warfare)’를 통해 중국 공산당이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태국 내 공산당을 지원하면서 어떻게 ‘친중국가’로 만들었는지 설명했다. 태국이 중국의 위성국가로 전락하는 과정을 두고 ‘화교’를 ‘86세대 운동권’으로, 군부를 ‘친중 성향 엘리트’로 바꾸면 우리나라 상황에도 바로 대입할 수 있다.

태국 공산당은 1920년대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공산당원은 화교였다. 태국과 중국은 1946년 1월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1949년 중국이 대만으로 후퇴한 뒤에도 양국 간 국교는 이어졌다. 그러자 중국 공산당은 태국 내 민족해방운동과 해방전쟁을 후원했다. 태국은 공산당과 화교를 탄압했다. 태국 공산당원 대부분이 화교였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태국은 ‘반공’ 차원에서 참전했다. 그러자 중국 공산당은 ‘중국국제방송’을 통해 태국 공산당의 활동을 지원하는 친중·반미 선전전을 펼쳤다.

중국 공산당은 태국 주변국 공산화에도 힘을 썼다. 1958년 베트남(베트민)과 라오스 공산반군세력(파테 라오)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 1962년 베트남 전쟁이 터지고 미군이 태국에 주둔하자 중국 공산당은 태국 국경 공산반군을 지원했다. 1965년 1월 중국 외교부장이 "태국에서 게릴라전을 원한다"고 말하자 태국 공산당은 ‘태국애국전선(TFP)’을 만들고 내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내전 시도는 1973년 진압됐다. 진압 이후 태국은 중국 공산당에 무역을 제안했다.

◇ 1997년 외환위기 이후 中에 호감…좌파 화교 활동 풀어주면서 친중화 가속

1976년 군사쿠데타로 태국과 중국 공산당 사이가 다시 안 좋아졌지만 1977년 새 총리가 덩샤오핑과 만나면서 관계는 회복됐다. 이후 중국-베트남 전쟁 때 태국은 중국 공산당을 도왔다. 1980년대 중반 베트남이 태국을 공격하자 태국-중국 공산당 관계는 군사협력으로까지 발전했다.

같은 시기 태국 화교계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다. 이들은 기업 활동으로 얻은 이익을 써서 태국 상류층에 진입하기를 희망했다. 중국 공산당이 이들을 도왔다. 화교들을 견제하던 태국 군부를 구워삶았다. 그러나 태국 국민 대다수는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꺼렸다. 태국 왕정과 정부도 친중노선을 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97년 태국발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진 뒤 미국과 중국의 다른 태도로 인해 대다수 국민이 친중파로 돌아섰다. 미국은 긴축정책을 요구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필요한 돈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실제 돈을 주지는 않았지만 태국 정부는 화교의 사회진출 제한을 풀었다.

◇ 태국, 2014년 3월 총선서 화교계 후보가 의석 78% 차지…이후 ‘위성국가화’

1999년 2월 양국은 ‘21세기를 위한 행동계획’에 합의했다. 그리고 2001년 1월 탁신 친나왓 총리가 취임한다. 화교계인 그는 태국-중국 수고 30주년 기념식에서 자신의 내각에 태국인보다 화교가 더 많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권위주의 정부와 자유경제체제를 혼합한 ‘차이나 모델’을 적극 받아들였다. 그는 또한 집권 후 좌익세력을 대거 영입했다.

태국이 완전히 친중화된 계기는 2014년 3월 총선이다. 선거에서 화교가 전체 의석의 78%를 장악하자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어 5월 잉락 친나왓 총리가 사임하자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이후 태국은 중국에 고속철 사업권을 주었고, 일대일로 사업에도 참여했다. 태국산 마약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량 유통되는 일도 ‘친중 국가화’ 이후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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