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가로수


머리는 이미 오래전에 잘렸다
전기 줄에 닿지 않도록
올해는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아
숨막히게 답답하다
라일락 향기 짙어지면 지금도
그날의 기억 되살아나는데
늘어진 가지들 모두 잘린 채
줄지어 늘어서 있는
길가의 수양버들
새잎조차 피어날 수 없어
안타깝게 몸부림치다가
울음조차 터뜨릴 수 없어
몸통으로 잎이 돋는다


김광규(1941~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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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는 도심 열섬효과를 가라앉히고 미세먼지를 거르지만, 웃자란 가지는 전선 등 가로시설물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들은 2월 중순 경부터 가지치기를 시작한다. 병충해 입은 가지, 보기에 안 좋은 가지도 가지치기 대상이다. 둥치에 바투고 우악살스럽게 잘린 가지는 절단면에 세균이 침투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는다. 이렇듯 무분별한 가지치기로 매년 1만6천여 그루가 고사한다. 나무는 말 못하는 생명이다.

팔다리 죄다 잘린 짜리몽땅한 가로수들이 봄을 맞았다. 거리를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그것들을 보면 물이 오른 걸 알 수 있다. 이제 가로수들은 ‘새잎조차 피어날 수 없어 안타깝게 몸부림치다가 울음조차 터뜨릴 수 없어 몸통으로 잎이 돋아날’ 것이다. 그리고 한여름 무성한 이파리로 그늘을 만들고 온갖 먼지를 걸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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