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주동식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7년 징집대상에 오르자 미국 육·해·공군이 경쟁에 나섰다. 해군은 멤피스 출신 사병들을 모아 엘비스 프레슬리 중대를 만들고, 개인 숙소도 주겠다고 했다. 육군은 해외 순회공연을 주선하고 언론 인터뷰와 방송 출연도 자유롭게 허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엘비스는 이 모든 제의를 뿌리쳤다. 그는 특별 대우를 원하지 않았고, 당시 서독에 주둔하던 제1기갑사단 기지에서 소총병으로 18개월 복무했다.

테드 윌리엄스는 1940년-50년대를 지배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타자이다. ‘마지막 4할 타자’로도 잘 알려진 테드 윌리엄스는 선수로서 최전성기인 24~26세 시즌과 32~34세 시즌을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군 복무로 빠졌다. 선수 경력의 4분의 1인 5년 반을 군대에서 보낸 것이다. 그가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미국의 70여년 전 사례를 가져온 것은 방탄소년단(BTS)의 병역 문제에 참고가 될까 해서다. 우리나라는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상의 성적을 올린 스포츠 스타나 이공계 박사급 인력 그리고 특정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과 국내 예술경연대회 1위, 5년 이상 중요 무형문화재 전수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사람 등을 ‘예술 요원’으로 규정해 병역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제 스포츠 경기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국위를 선양한 것에 대한 보상 성격이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스포츠에 전념한 선수들 경우 국민들의 평균적인 학습 수준에 이르지 못해 생업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이 암암리에 작용했다. 애초에 병역 면제나 특례 등이 지적 육체적으로 정상적인 병역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데서 이런 사정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은 스포츠나 연예계 스타들은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 상위권에 오른 지 오래다. 이들의 생업을 위해 병역 혜택을 줘야 한다는 명분은 진작에 사라졌다. 그렇다면 남는 명분은 이들의 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피상적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병역은 스스로 무장을 갖출 수 있는 재력과 의지, 체력을 갖춘 시민계급에게만 부여되는 고유한 권리이자 명예였다. 나라의 주인이 스스로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주인의식이다. 여기에서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이 만들어졌다. 로마는 노예노동에 의지하는 대규모 라티푼디움(latifundium)이 자영농을 대체하고, 로마시민으로 구성된 중무장 보병 대신 용병에 의지하게 되면서, 국가 해체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국민 개개인의 헌정질서에 대한 자발적 충성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근대국민국가에서,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 국민 모두가 병역의무를 갖는 제도)는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이다. BTS에게 병역특례를 줄 경우 유발되는 경제효과가 10년간 약 56조 원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병역의 예외가 자꾸 늘어날 경우 국민국가의 소속감 붕괴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아무도 계산하지도, 언급하지도 않는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테드 윌리엄스가 만들어낼 경제적 가치가 BTS나 우리나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보다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낼 엄청난 경제적 가치나 찬란한 기록들의 가치를 모를 정도로 미국인들이 멍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지엽적인 가치에 여전히 집착하는 것은 한국이 아직 후진국 특유의 열등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한국은 제국이 될 수 없는,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개병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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