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세운상가 재개발안이 발표됐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 이 공간이 품고 있는 근현대사다. 그곳의 출발은 일제시대 소개도로라는 것, 6.25 이후 사창가 ‘종삼’이었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풀스토리는 이 분야의 스테디셀러 <서울도시계획 이야기>(전5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보석 같은 디테일이 무진장한 서울 역사의 보물창고다. 저자는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출신으로 서울시립대 교수를 지냈다가 연전 타계한 손정목 선생이다. 발군의 도시 이야기를 남긴 그의 명성은 중앙일보 시절 동료 기자 신혜경 씨가 내게 들려줬다.

그렇게 알게 된 인연의 손정목 증언에 따르면, 소개도로는 일제하 미군 공습 대피용이었다. 폭 50m를 비워놓아서 한쪽에 붙은 불이 옆으로 옮기지 않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1945년 3월 도쿄 공습을 지켜보며 부랴부랴 착공했는데 시작하자마자 8.15를 맞았다. 그렇게 볼썽사나운 터(길이 1.1km)가 바로 세운상가 자리인데, 6.25 직후 거길 재빠르게 점령했던 건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무려 2000동이 어느 순간 거대한 사창굴로 변했다. 문제는 그게 68년에 취임했던 ‘불도저 시장’ 김현옥 눈에는 너무 끔찍했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박정희 대통령이었는데, 서울의 얼굴 복판에 똬리 튼 대규모 사창굴 블록이란 정말 누가 볼까 봐 얼굴 뜨거웠던 것이다. 개발시대의 탱크인 그 둘이 의기투합해 전광석화처럼 조성했던 게 세운상가였다. 종묘~필동에 들어선 대형 주상복합 세운상가는 그래서 조성됐는데, 그건 한마디로 "짧았던 영광, 긴 비난의 대상"이었다. 우선 67년 준공식 직후엔 서울시민의 자랑이었다. 스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기도 했다. 당국은 동양 최대규모라 자랑했고 그 위의 5~13층 아파트도 인기 폭발이었다.

70년대 초반 한강맨션이 건설되고 79년 롯데백화점 등이 들어서면서 인기는 바로 시들해졌다. 결정적으로 서울은 동서로 시가지 흐름이 이어지는데, 남북으로 가로지른 세운상가가 그걸 떡 하니 잘라버린 흉물이다. "김수근 일생일대의 실수"라는 비판도 바로 등장했다. 그렇다. 세운상가는 그 시대 그 시절 작품이다. 그걸 도시재생 어쩌구 하며 분칠하려 했던 전임 시장 박원순은 도시 자체를 몰랐던 바보였다. 그 공간을 고층건물과 녹지가 어우러지는 블록으로 바꾸는 것이 새로운 모던이고, 우리 모두의 과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