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가 두고두고 화제다. 키워드는 물론 자유였고 16분 취임사에서 서른다섯 차례나 강조했는데, 못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요즘 말로 2% 부족한데, 뭣 때문일까? 그렇게 높이 든 자유의 깃발을 북한 해방이란 대의(大義)과 연결짓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자유의 원칙 따로, 북한 비핵화 따로 놀면서 그가 말한 자유가 추상적 원칙 천명에서 그쳤다. 그걸 들으며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옛 연설문이 생각났다. 기백이 넘치고, 당시 약동하던 대한민국 정치철학도 담긴 1960년대 명 연설문 말이다.

아니 조선조 이래 문약(文弱)에 찌들었던 한국인의 DNA를 바꾸려 했던 큰 뜻도 담겼는데, 그게 자유중국 장개석 총통과의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했던 1966년 2월 연설이다. 시작은 이렇다. "누구는 대한민국과 자유중국을 자유의 방파제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비유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가 파도에 시달리면서도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존재란 말입니까?" 그 다음이 대박이다. "우린 전진합니다. 우리야말로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입니다. 이 파도는 머지않아 북경과 평양까지 휩쓸게 될 것입니다."

자유의 파도, 자유의 쓰나미가 되겠다는 멋진 다짐이자 사자후인데, 그렇다. 이 연설문의 존재를 일찌감치 알았더라면 이번 취임사에서 박정희 오마주도 한 대목 살짝 집어넣으면서 또 한 번의 역사적 취임사가 탄생했을 것이다. 역사도 바꿀 수 있다. 오버하는 게 아니다. 말의 힘은 그만큼 무서운 법인데, 실제 사례가 있다. 반공주의자로 유명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 공산당 치하의 자기 조국 폴란드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찾는 곳마다 "두려워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건 전체주의 압제에 저항하라는 유도였다. 그걸 TV로 지켜보며 무릎을 쳤던 것이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다. 1982년 회동한 두 지도자는 공산주의 패망에 대한 비전을 확인했다. 이내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역사의 잿더미 위에 던져질 것"이라며 자유의 십자군 운동을 제창했다. 그걸 전후해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출범했고 공산권 붕괴라는 세계사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그래저래 윤 대통령 취임사는 2% 아쉽지만 이제 시작이다. 그 빈칸을 채워야 하는 게 앞으로 5년이다. 우린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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