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충남 서산

백제의 미소 가득 마애삼존불...해미읍성서 짚공예·민속놀이
가야산이 품은 맑은 용현계곡, 무릎 높이 수심속 차가운 비명

조선시대 3대 읍성으로 불리는 해미읍성.
조선시대 3대 읍성으로 불리는 해미읍성.

하늘 맑고 바람 좋은 봄날, 가족과 손잡고 느긋하게 즐길 만한 여행지 없을까. 그리 멀지 않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원한다면 서산을 추천한다. 아이들과 즐거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계곡과 숲체험을 즐길 수 있는 자연휴양림, 조선 시대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읍성, 맛있는 먹거리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서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서산마애삼존불이다. 정식 명칭은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백제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큰 암벽 중앙에 높이 2.8m 석가여래입상이 있고,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 왼쪽에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선명하다. 볼에 가득 번진 미소가 너그럽고 온화해 ‘백제의 미소’라 일컫는다. 두툼한 얼굴에 커다란 눈과 반원형 눈썹, 넓고 얕은 코, 도톰한 볼살 등이 어우러져 우리가 흔히 보는 위엄 가득한 불상과 거리가 멀다. 옆집 아줌마 아저씨를 닮은 평범한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마애여래삼존상에서 가기 전 계곡이 펼쳐진다. 용현계곡이다. 이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용현자연휴양림에 닿는다. 길이는 약 2.7km. 용현계곡은 가야산이 품은 수려한 계곡으로 가야산 줄기인 석문봉 아래 옥양봉과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북동쪽 능선과 일락산에서 상왕산으로 연결되는 북서쪽 능선 사이에 길게 자리 잡았다. 수량이 풍부하고,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붉은박쥐(황금박쥐)와 수리부엉이, 가재와 반딧불이 등이 서식할 만큼 깨끗하다.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물놀이할 곳이 많다. 수심이 무릎 높이 정도라 가족끼리 편안하고 안전하게 휴가를 만끽하기 적당하다. 계곡은 휴양림 쪽으로 갈수록 울창하고 깊어진다. 물소리도 더 커진다. 계곡으로 내려서면 숲이 우거져 한여름 따가운 햇빛도 들어오지 못한다. 강원도 어느 깊은 계곡에 들어선 것 같다. 계곡 주변은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화강암층인데, 물살이 오랜 세월 바위를 동그랗게 갈고 다듬어 만든 포트홀이 눈에 띈다. 길가에 차를 대고 잠시 계곡으로 내려서 발을 담그니 그야말로 신선이 된 기분이다.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30분 이상 발을 담그고 있기 어렵다.

계곡 끝에 용현자연휴양림이 자리한다. 산등성이와 계곡 주변으로 숲속의집과 산림문화휴양관이 들어섰다. 산림문화휴양관은 3인실부터 6인실까지 객실 크기가 다양하고, 숲속의집은 6~10인이 숙박할 수 있다. 숲에는 까치박달, 개암나무, 애기닥나무가 자생한다. 숲속에 조성된 탐방로와 등산로를 따라 산책하다 보면 청량한 공기가 가슴에 들어온다. 나무 목걸이 만들기, 독서대 만들기 등 다양한 목공 체험과 숲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하니 미리 홈페이지를 참고하고 가면 더 알찬 시간이 될 것이다.

화강암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용현계곡.
화강암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용현계곡.

휴양림에 가기 전, 서산 보원사지(사적)가 있다. 거대한 절집이 있던 터에 지금은 당간지주(보물)와 법인국사탑(보물) 등이 쓸쓸하게 남았다. 보원사는 10세기경 세운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절터에서 나온 유물이 5개나 보물로 지정됐다. 1968년에는 백제와 통일신라 시대 금동여래입상이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해미읍성은 읍내 한가운데 우뚝 선 성이 인상적이다. 조선 태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해 세종 3년(1421)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 높이 5m, 둘레 1.8km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우리나라 읍성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고 평가받으며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읍성’이라 불린다.

읍성 안에는 동헌과 객사, 민속 가옥 등이 있다. 초가지붕을 인 민속 가옥에서는 서산 지역 노인들이 재현하는 다듬이질이며 짚공예 등을 볼 수 있다. 남쪽의 정문 격인 진남루에서 동헌으로 가는 길 중간에는 둥근 담장을 두른 옥사(감옥)도 있는데, 이 옥사에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었다. 서산과 당진, 보령, 홍성, 예산 등 서해 내륙 지방을 내포(內浦) 지방이라 일컫는데, 조선 후기 서해 물길을 따라 들어온 한국 천주교가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싹틔웠다. 19세기 이 지방에는 주민 80%가 천주교 신자였을 정도다.

당시 옥사에는 충청도 각지에서 잡힌 천주교 신자로 가득했다. 옥사 앞에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는데, 이 나뭇가지 끝에 철사를 매달고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고문하고 처형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이 나무에는 사람을 매단 철사 자국이 있다. 신자가 많아 처형하기 힘드니 읍성 밖 해미천 옆에 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했다고 한다.

순교의 역사를 뒤로하고 바라보는 읍성은 평화롭기만 하다. 읍성 안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는데, 벤치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주민과 관광객의 모습이 유적지가 아니라 공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노는 아이도 있고, 투호나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 전통 놀이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이 마냥 정겹다.

해미읍성에서 나온 길은 운산면 목장 지대를 지나 개심사로 이어진다. 일주문에는 ‘상왕산 개심사’라는 편액이 걸렸다. 이응노 화백의 스승인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일주문을 지나 10분 정도 솔숲을 걸어가면 무심한 듯 서 있는 절집을 만난다.

개심사는 백제가 망하기 불과 6년 전인 654년(의자왕14)에 창건되었으니 말 그대로 천년 고찰이다. 절을 창건한 혜감스님은 절의 이름을 개원사(開元寺)로 했으나, 고려 때인 1350년에 처능스님이 중건하면서 ‘마음이 열리는 절’이라는 뜻을 담아 개심사(開心寺)로 바꿨다고 한다.

개심사 해탈문에 들기 전, 외나무다리와 만난다. 반듯한 직사각형 연못에 큰 통나무 다리가 걸쳐 있다. 굳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경내로 들 수 있지만, 열에 아홉은 이 풍경에 반해 다리를 건넌다.

용현계곡 가는 길의 울창한 숲길.
용현계곡 가는 길의 울창한 숲길.

개심사에는 외나무다리 말고 눈길 끄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각 가람을 받치는 기둥이다. 하나같이 굽었고 배가 불룩하며, 위아래 굵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봐온 매끈하고 다듬어진 기둥이 아니다. 나무를 전혀 손질하지 않고 원래 모습대로 썼다. 해탈문이며 범종각, 심검당 등이 대부분 그렇다. 특히 범종각 지붕을 받치는 네 기둥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모습이 오히려 파격적이다. 굽은 나무로 이토록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시내에 자리한 서산동부시장은 가을이면 꽃게와 대하가 넘쳐난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천국 같은 곳이다. 인근에서 잡아 올리는 낙지며 조개, 갑오징어의 싱싱함도 남다르다. 아이스박스에 포장해주니 해산물 쇼핑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운산면 여미리에 자리한 유기방가옥에서는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다. 100년이 넘은 고택으로, 지붕 위로 쏟아질 듯한 별이 가을밤의 운치를 느끼게 해준다. 유기방가옥 건너편에 자리한 ‘여미갤러리&카페’는 방앗간을 개조해서 갤러리 겸 카페로 꾸민 곳이다.

서산 여행의 종착점은 대산읍 삼길포항이다. 낚싯배를 빌려 당일치기로 낚시를 즐겨볼 수도 있고, 부두에 정박한 어선에서 맛보는 회도 별미다.

[여행정보]

읍성뚝배기의 소머리곰탕.
읍성뚝배기의 소머리곰탕.

‘게국지’는 서산, 태안 지역에서 겨울 밑반찬으로 먹던 토속음식. 게장을 담갔던 국물에 묵은김치와 배추 등속을 넣어 끓여 먹는다. 서산시청 앞 진국집(041-665-7091)은 게국지로 유명하다. 서산에서는 우럭을 소금에 절여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우럭포를 만들어 두고두고 국을 끓여 먹었다. 우럭 대가리와 뼈로 육수를 우리고 무와 대파, 청양고추, 두부를 넣은 후 새우젓으로 간을 해 펄펄 끓인다. 국물맛이 깊으면서도 시원해 술꾼들의 해장국으로도 사랑받는다. 향토(041-668-0040)는 우럭젓국과 간장게장을 잘하는 집이다. 해미읍성 앞에 자리한 읍성뚝배기(041-688-2101)는 소머리곰탕으로 유명하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