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서민

난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오래 산 건 아니다. 속초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세 살 때부터 속초에 살다가, 네 살 때 서울로 왔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삼십 년 넘게 서울서 살았다. 초중고와 대학, 대학원을 나왔고, 군복무도 서울서 했다.

그 뒤 직장 때문에 천안에 자리를 잡았고, 올해로 12년째 천안에서 살고 있다. 출생지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다 보니 사람들은 날 ‘호남인’이라 분류하지만, 세상의 시각과 무관하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은 ‘천안인’이다. 광주와 서울, 천안 중 천안을 가장 사랑한다는 뜻이다.

천안의 인구는 지금 65만 명, 2002년엔 40만에 불과했으니 지난 20년간 꾸준히 인구가 늘어났다. 지방 도시 대부분이 인구 감소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을 감안하면, 천안은 혜택받은 곳이다. 이런 천안이 난 자랑스럽다. 어쩌다 다른 지방에 가면 난 이렇게 묻는다. "너희 시는 인구가 몇이야? 내가 사는 천안은 100만이 코앞이야." "야, 이 도시에 스타벅스 있어? 천안에는 18개나 있어!" 이쯤 되면 날 천안사람으로 부른다 해도 크게 무리가 없지 않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난 천안을 더 잘 되게 해줄 사람에게 투표할 것이다. 천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지난 대선 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광주에는 스타필드 같은 복합쇼핑몰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천안만 해도 복합쇼핑몰이 있으며, ‘라쿠아비바’라는 쇼핑몰도 곧 착공에 들어간다는데, 인구 145만의 광역시 광주에 갈 만한 쇼핑몰이 없다니 놀랄 수밖에. 심지어 광주 분 중 일부는 스타필드 사진을 보면서 "이거 합성 아니야? 어떻게 백화점 안에 자동차 매장이 있을 수 있어?"라는 반응을 보였단다.

이 놀라운 현상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소위 광주정신 때문이었다. 복합쇼핑몰로 인해 지역의 소상공인이 장사가 안돼 고통을 받는 건 상생을 우선으로 하는 광주정신에 위배되니, 쇼핑몰 대신 시민들이 전통시장이나 5일장을 이용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하남 스타필드에 갔을 때 그 화려함에 놀라 500번 넘게 "와" 소리만 질렀던지라 쇼핑몰에까지 광주정신이 적용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민주당의 소상공인 배려는 매우 아름다운 일이며, 그런 민주당을 계속해서 찍어대는 광주 시민들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광주 시민들도 복합쇼핑몰에서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타 지역 주민들의 욕망을, 물론 광주정신으로 재단하면 천박하게 보이겠지만,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천안에 사는 호남인들이 복합쇼핑몰을 반대하는 민주당 후보를, 단지 자신이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출신이 어디건 간에 천안에 자리를 잡고 살면 천안 사람인 것이며, 그렇다면 천안이 더 잘 되는 방향으로 중지를 모으는 게 맞지 않을까?

이 논리는 계양에도 적용된다. 지역구가 생긴 이래 계양은 늘 민주당 텃밭이었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당선인을 10% 가까이 앞섰다. 그건 이번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마찬가지여서, ‘국민의 힘’에게 계양은 험지로 분류된다. 이유를 물으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응, 거기는 호남 인구가 많거든."

참 이상하다. 아무리 호남에서 태어났다 해도, 계양에 터를 잡고 살아가면 계양 사람이 돼야 하거늘, 그 지역 호남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분들은, 계양에서 25년간 의사로 살았고, 자녀들을 모두 계양에서 키운 계양 사람 윤형선 후보 대신,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성남에 자리를 잡고 평생을 살아온 이재명을 지지한다. 그러니까 이재명을 지지하는 호남인들은 몸은 계양에 살지만, 정신은 민주당 간판만 달면 무조건 찍어주는 호남에 두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그분들은 계양인이 아닌, 호남인이다. "인천은 원래 외지인이 사는 곳"이라는 이재명의 말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분들 스스로 외지인으로 살겠다면, 이를 말릴 도리는 없다. 하지만 그 선택이 계양 전체를 ‘호구’로 만들고, 계양의 발전을 저해하는 건 참으로 안타깝다. 그분들께 말씀드린다. 광주정신은 광주에서만 발휘해주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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