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순수이성과 공익성에 입각, 세계영구평화 가능성을 역설했던 독일 철학자 칸트 (E. Kant)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성적 인간의 정의실현"이 목표다. 그 칸트도, 인간의 자유가 구속받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상황에서는, 시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정부가 나서서 공권력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칸트의 관념철학이 자유를 중시하는 개별국가 내부에선 별다른 저항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근대 주권국으로 구성된 국제사회에서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의 모든 주권국가는 각자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습속에 따른 나름의 정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 핵심인 ‘자유’도 그 주소지가 각기 달랐다. 칸트 이전에 시작된 자유의 기원은 서구를 중심으로 영국의 프리덤 (Freedom), 프랑스의 리버티(Liberty), 독일의 프라이하이트 (Freiheit) 등으로 삼분되었다. 당연히 계몽주의철학자들 사이에서 자국의 자유관념을 우월적 문명관념으로 지켜내기 위한 열띤 경쟁이 지속됐다.

그러나 자유관념의 문명간 삼파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 의해서 그것도 20세기에 와서야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완성되었다. 영국의 식민지로 서구 계몽주의철학자들이 변방으로 생각했던 미국에서 말이다. 그러니 국제사회 대부분의 자유인들은 아직도 자유를 잘 모른다.

프랑스 최고 지성 레이몽 아롱 (Raymand Aron)은 인간과 국가의 행동에는 도덕적 함의가 절대 배제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도덕적 함의는 반드시 두 가지형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칸트적 도덕관이며 나머지는 마키아벨리적 도덕관이라고 덧붙인다. 아롱은 이 두 가지 도덕관이 합쳐져 이행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서방은 슬금슬금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유를 향한 결기를 부담스러워하며 이제 그만 전쟁을 끝냈으면 한다. 유엔은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인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그 흔한 안보리성명조차도 못 내고 있다. 극도로 이질적인 국제사회 대립구조에서 칸트의 도덕관과 마키아벨리의 국가이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점점 의문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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