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김세원

정회원으로 등록된 연구자만 5만 명에 20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 물리학회의 차기 회장으로 김영기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당선됐다. 그의 인터뷰기사를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김 교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입자물리연구소인 미국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했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만 29명이 나온 시카고대에서 2016년부터 물리학과장을 맡고 있다. 한국인이 미국 물리학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1899년 학회 설립 이래 최초이고 아시아인으로서는 두 번째다.

한국인, 그것도 여성이 어떻게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물리학회의 수장으로 선출될 수 있었을까? 비결을 묻는 질문에 김교수의 대답은 다소 엉뚱했다.

"가끔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한국의 살풀이춤, 부채춤을 보여준다. 시카고대에서 내가 지도하는 연구원이나 학생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연구실에서 돌잔치도 해준다. 과거 연구소에선 세미나를 시작할 때 한국에서 가져온 징을 쳐서 알렸는데 다들 소리가 은은하게 울린다며 좋아했다."

필자에게는 정(情)과 신명을 바탕으로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한국식 리더십’을 발휘하여 성공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고려대 입학 후 첫 1년은 탈춤동아리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고 보니 김영기란 이름이 낯익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김 교수와 필자는 군사정권의 기세가 등등했던 1980~1981년 고려대 탈춤동아리 민속학연구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초랭이와 말뚝이가 양반과 선비를 조롱하고 취발이와 미얄할미가 신분질서를 비웃는 탈춤의 역동성과 풍자정신, 해학의 힘으로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엄혹했던 시절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학교 체육시간에 에어로빅이나 줌바댄스를 하는 것보다 전통 가락과 장단에 맞춰 탈춤을 추는 것이 한층 신나고 ‘한국식 리더십’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젠가 김교수를 만나면 묻고 싶다. 탈춤동아리의 추억이 당신을 오늘의 그 자리에 있게 만들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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