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천
이주천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8월 초 대만·한국·일본을 방문하면서 미중간 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의 기원은 멀리는 오바마행정부까지 거슬러가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본격화됐다. 펠로시는 1987년부터 정치에 뛰어들어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물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의 연설문을 공개적으로 찢어버려 시선을 한몸에 받았던 ‘철의 여인’이다. 펠로시가 이번에 대만에 간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의 시진핑은 줄곧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이 내정간섭으로 간주하는 대만행을 굳이 강행해 왜 중국을 자극했을까.

첫번째,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결탁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숨어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전쟁이 벌써 5개월 2주가 넘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승전은커녕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러시아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하게 된다면 전쟁은 더욱 장기화될 것이고, 미국과 나토 등 자유진영의 전쟁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러시아-중국 협력관계가 차단되어야 한다. 중국으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전쟁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대만 문제에 집중하게 해서 우크라이나 전황에 관심을 적게 만드는 것이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게 유익하다. 현재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대만해협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의 참패와 퇴각을 보는 것이다. 미국에게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우크라이나전쟁을 위한 양동작전으로 볼 수 있다.

두번째, 미국의 중간선거가 오는 11월에 있는데 여론조사는 민주당에 아주 불리하게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인플레와 석유가 인상 등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최악의 지지도를 얻고 있다. 이런 추세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가 불보듯 뻔하다. 공화당의 압승을 막고 지지층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대외정책에서 강수를 둘 수밖에 없다. 펠로시는 하원의장으로서 민주당 지지세를 결집시켜야 한다. 이것이 펠로시의 자기정치다. 바이든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굳이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중국과의 긴장상태를 지속시키는 것이 중간선거에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공화당도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지지하는 초당적 태도를 보였다. 대만 방문을 강행한 펠로시의 동북아 개인외교는, 민주당의 지지도 하락을 멈추게 한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미중간 긴장상태가 지속되어 단기간에는 경제적 불이익이 초래될 수는 있다.

세번째, 현재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대비가 완료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볼테면 해보라"는 강경 메시지를 중국에 전달한 것이다. 이미 미국·호주·일본·인도 등이 참가한 대중국 포위망 쿼드가 완료됐다. 세계공급망 리셋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으며 칩4 반도체동맹을 통해 다시 중국을 옥죄고 있다. 바이든은 취임 초 한국의 빅4그룹인 현대의 전기자동차, 삼성의 반도체, SK·LG의 배터리 공장 등을 미국에 유치했다. 그러기에 미 국방부 대변인은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고대 희랍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불후의 명작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패권국가 스파르타가 전쟁을 결행한 이유를 스파르타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하는 아테네를 두고 볼 수가 없어서였다고 했다. 이것이 근 30년에 걸친 장기전의 시작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후일 국제정치학자들은 제1패권국가와 그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제2패권국가가 불가피한 전쟁상태로 빠지는 것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은 중국의 도발을 오히려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지나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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