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백두혈통 놀음이 가관이다. 북한 매체가 김정은의 딸 김주애를‘조선의 샛별 여장군’으로 호칭한 지도 꽤 됐다. 4대 권력 세습 과정에서 정말 역겨운 건 국내 언론이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은 깍듯하게 ‘김정은 위원장’, ‘김주애 양’이라고 부르는 걸 잊지 않았다. 5년 전 북한이 민노총에 "김정은 찬양 열기를 끓게 하라"고 지시했던 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러나 신통력이 없더라도 저들의 비극적 앞날은 예측할 수 있다. 김주애로 가는 앞으로 몇 년이 백두혈통 존속의 고비다. 평양 대붕괴의 입구인 지금 새삼 흥미로운 건 김씨 집안의 핏줄 사랑이다. 세습 4대 드라마란 것도 ‘핏줄이 당기는’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작은 김일성이다. 그가 자주 했던 말이 이랬다. "공산주의자도 자식 귀여운 건 어쩔 수 없어."

그래서 김일성은 당초 후계자이던 동생 김영주를 쉽게 내쳤다. 그 전 김일성이 1947년 평양 공관에서 벌인 엽기적 굿판도 기억해야 한다. 당시 공관 내 호수에서 물놀이하다 익사했던 당시 세 살짜리 아들(김정일 동생 슈라)의 죽음을 슬퍼해 씻김굿 한판을 벌였던 것이다. 사망 10년 뒤 다시 무당과 스님을 불러 천도재까지 올렸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이런 사실은 뜻밖에도 좌파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책 <김정은 코드>에 죄다 나온다. 자식 사랑 DNA는 김정일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1971년 장남 정남을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얻은 뒤 엄청 기뻐했다. 9살 정남을 스위스로 유학 보낼 때는 며칠 전부터 술을 퍼마시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다음은 김정일과 20여 년을 살았던 성혜랑(성혜림 친언니)의 증언이다. ‘술을 마시고 그는 아이처럼 울었다. "나 다 알아. 너희들 정남이를 나한테서 떼내 가려는 거." 너희들이란 나(혜랑), 혜림, 어머니(혜랑의 모친)를 말한다.… 눈물은 진심이었다. 우리도 울었다.’(<등나무집>)

그러던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겼다. 그만큼 변덕도 대단하다는 얘기다. 김정은도 그 핏줄 사랑 DNA를 이어받았으리라. 김주애 등장은 그 맥락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경험한 전체주의 끝판왕 북한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 평양 대몰락은 1919년 3·1운동 이후 펼쳐진 한인 공산주의운동 100년사의 격렬한 재구성을 몰고 올 것이다. 역사의 신이 준비해온 북한 급변 사태를 지금부터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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