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
여진

5년 전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며칠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늦은 밤, 숙소로 돌아가던 중 멀리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들려왔다.

선율과 호기심에 홀려 소리의 근원을 찾아냈다. 나지막한 건물로 둘러싸인 아담한 광장이었다. 커다란 야외용 스피커에서 수난곡이 장중하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단출한 조명기가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열 명 정도가 간신히 설 수 있는 낮은 무대는 마루에 가까웠다. 배우로 보이는 대여섯 명이 분주하게 무대 위에 널린 의상과 소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관객은 50명 정도였는데, 절반은 광장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고, 나머지는 서 있었다.

너무 늦게 와서 연극 공연이 끝난 줄 알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관객은 어느 한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시선과 핸드폰 카메라를 무대 위로 집중하고 있었다. 무대 위 배우들이 노련한 동작으로 소품을 배치하고 의상을 고쳐 입었다. 그리고 미리 지정된 위치에 서서 동시에 포즈를 취하곤 그대로 그림처럼 멈췄다. 관객의 탄성과 박수가 터졌다.

무대 위는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지오(1576~1610)의 걸작 ‘그리스도의 매장’이 되었다. 경이로웠다. 배우들의 포즈, 표정, 의상, 소품, 빛과 그림자 심지어 근육의 뒤틀림까지 원작과 똑같았다. 원작과 다른 점은 캔버스 위의 평면이 아니라 무대 위의 입체이고, 그림 속의 인물들이 지금 눈앞에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약 20초 동안 그림처럼 멈춰 있던 배우들이 정지 동작을 풀고 새 의상으로 갈아입으며 장막을 설치하고 소품을 날랐다.

다음 그림을 준비하는 과정이 그대로 관객에게 노출되는데, 연출가의 의도임을 알았다. 이 절도 있는 움직임들이 카라바지오의 명작 못지않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음악은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눈물의 날’(Lacrimosa)로 바뀌고, 준비를 마친 그림 속 인물들이 또 동시에 포즈를 취했다. 카라바지오의 ‘성모 마리아의 죽음’이었다. 이 공연이 바로 살아있는 그림, 타블로 비방트(Tableaux Vivants)다.

생소한 공연 장르인 타블로 비방트의 역사는 유럽의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고 싶은 시각을 소유하고 싶었던 왕족과 귀족들은 화가에게 거액을 주고 작품을 의뢰했다. 하지만 그림은 완성되는 데 오래 걸렸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수정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미 소유한 하인들에게 의상을 입혀 저렴하고, 즉각적이며, 수정이 가능한 ‘살아있는 그림’을 지시했다.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타블로 비방트는 20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했지만, 사진의 발달과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사라졌던 타블로 비방트가 21세기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단순한 과거의 향수 때문이 아니다. 당시에는 몰랐던 세련된 미학이 시대의 재조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선 ‘장르 간 융합’이다. 몇백 년이 흘러 타블로 비방트는 무용·연극·미술로 갈라져 버린 예술의 본류를 꿰뚫는 참신한 미학적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두 번째는 화가의 명작이 탄생하던 순간의 재현이다. 배우들이 멈춤 동작으로 취하는 포즈는 화가 카라바지오가 400년 전에 모델을 세워 놓고 보았던 시선이다.

화가는 3차원의 시선을 2차원 평면으로 남겼다. 타블로 비방트를 통해 현재의 우리는 400년 전 화가의 시선을 공유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배우가 멈춰있는 동안, 관객은 마치 조각 작품을 감상하듯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무대를 훑었다. 완성된 그림의 시점은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타블로 비방트를 감상하는 시선은 자유롭다. 가장 아름다운 구도를 잡아내려는 화가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는 귀하고 매력적인 체험이었다.

배우들은 카라바지오의 그림 예닐곱 점을 같은 방식으로 구현했다. 마지막에는 단 한 명의 배우와 과일 바구니만이 무대에 남았다. 비발디의 음악이 가장 앳된 배우가 포도주잔을 들어 올리다가 그대로 정지했다. 카라바지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젊은 바쿠스’였다. 20초간 그림으로 멈춰있던 배우는 무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으며 잔을 들어 관객에게 건배했다. 공연의 끝이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수십만 원짜리 공연보다 더 큰 감동을 준 길거리 공연이었다. 선조가 남긴 불멸의 문화유산들을 후대가 융합해 신세계를 만들어냈다. 부러워만 하지 말고 우리도 해 보자. 우리에겐 단원의 풍속화와 저잣거리의 음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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