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이정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이번 총선 전략은 ‘586 운동권세대 청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운동권 청산론’이 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는 것을 보면, 이는 단순히 보수진영만의 목소리가 아닌 일반 여론의 흐름이다. 과거에는 그들이 정의롭게(?) 보였을 지 모르지만, 이제 민주화를 넘어서 4차 산업을 선도해야 하는 현 시대적 상황에서는 너무 구태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국민 눈에도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시대를 교체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이번 총선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하지만 이 시대교체를 하기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우리나라의 현재 연령대별 인구 비중에 있다. ‘포스트 586세대’라고 할 수 있는 4050세대가 가장 많은 인구 비중(32.5%)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의 주민등록 연령별 인구통계에 따르면 50대가 16.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15.9%를 차지한 40대로 기록됐다. 최대 비중 인구연령을 봐도 남녀 모두 71년생(52세)으로 나타났다. 진보성향이 압도적으로 강한 4050이 우리사회의 현 주류라는 증거다. 선거에서는 유권자 지형이 매우 중요한데, 그동안의 선거에서 보수진영이 고전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구분포에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20대였던 그들은 노무현 돌풍을 주도하며 운동권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포스트 586’을 자처했다. 당시의 추억과 향수가 너무 강했을까? 20년이상의 세월이 지나 중년이 된 그들은 아직도 이념적으로 ‘정체’되어 있다. 이는 민주당과의 ‘정서적 일체감’때문이다. 이성은 냉철하기 때문에 쉽게 변할 수 있지만, 한번 형성된 정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민주당이 막나가도 4050은 민주당의 든든한 파수꾼 역할을 해왔던 이유다.

이러한 4050세대를 묘사하는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지난 2021년 민주당이 의뢰한 한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는 민주당에 대해 ‘독단적이며 말만 잘하고 겉과 속이 다른 무능한 4050 남성’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들만이 우리사회에서 가장 정의롭다는 ‘깨시민’이란 독단적인 생각, 내로남불로 겉과 속이 다른 그들의 정체성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랬던 그들이 서서히 민주당과의 정서적 일체감에서 해방되고 있다. 아직 40대에서는 미동 정도에 불과하지만, 운동권의 직속 후배인 50대에서는 그 진동이 매우 커지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의뢰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취임한 12월 4주차에는 50대에서 정당 지지도가 약 20% 민주당이 우세했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그 격차가 5%로 오차범위까지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국사태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들이었기에 민주당은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다.

총선을 30여 일 앞두고 민주당은 공천 종반을 향해 거의 막가파식으로 내달리고 있다. 경선으로 번복됐지만, 지난 대선 이재명 캠프에서 김혜경 여사 수행을 담당했던 권향엽의 전략공천을 시도하며 ‘재명당’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공천 파동을 통해 과거 ‘찐 민주당’ 세력들이 나가고 친명 세력이 주류가 되자 감성적으로 ‘정서적 일체감’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기득권 타파를 외쳤던 민주당이 ‘의대 증원’ 이슈에 대해 입 꾹닫고 있는 점도 한 역할을 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음성과 함께 4050의 함성이 민주당을 향해 서라운드로 울려 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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