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커크
도널드 커크

영원한 평화의 도래를 믿었던 시절 얘기는 이제 옛말이다. 유럽·아시아·중동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야수처럼 육·해·공으로 옥죄 오는 러시아 앞에, 그 저항세력 아무도 우크라이나를 위해 상처받거나 죽음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각국 지도자들은 저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우크라이나 사이의 긴 국경에서 포격이 시작되는 등 사태가 본격 악화된다면 뭘 얼마나 잃거나 얻게 될지 다들 궁금해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러 카드를 쥔 듯하다. 벨라루스의 장기 독재자 알렉산더 루카셴코 대통령이 그래도 푸틴에게 믿을 만한 존재인 반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30개국 정상들의 속내는 제각각이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들여 오고 싶은 독일, 그러나 미국의 반대가 걱정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터키는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완전히 러시아 편으로 기울었다.

아무도 우크라이나를 위해 피흘리고 싶어하지 않는 다는 것을 푸틴이 알고 있다. 이게 최우선 고려 사항이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최대 러시아 인구를 가지는 곳이다. 우크라이나 인구 17%가 러시아인이다. 미군을 추가 파견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은 그 러시아인 공동체의 향방에 별 힘이 없다. 소총을 들고 러시아에 맞서겠다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보면, 수백만명 죽어갈 광경이 떠올라 마음 아프다.

현재 21세기 전 세계적 ‘그레이트 게임’이 동북아에서 뜨겁다. 중국과 일본은 외교적 자세의 수위를 고민하며 실질적인 문제에 휩쓸리지 않으려 조심하는 눈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선 못믿을 푸틴을 주시하는 한편 나토의 약화 조짐을 면밀히 관찰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역시 자신의 수가 있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 동안 보류했던 미사일 시험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붙들려 있으니 뭐 어쩌겠나 생각할 것이다. 그가 도발한다 해도, 미국은 어차피 중국·러시아에게 거부당할 ‘유엔 제재’를 요구해보는 것 말고 별 수가 없다.

이 ‘그레이트 게임’에서 중국의 시진핑이 대만문제로 당장 무력 충돌의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남중국해를 포함한 중국 주변부, 인도 및 파키스탄과의 국경 등 모든 곳에서 ‘진격’할 적절한 시기라고 여길 수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로질러 파키스탄 아라비아해 항구인 과다르와 유럽으로 이어질 고속도로가 필요하다. 미국의 동맹이었던 파키스탄을 중국 쪽으로 확실하게 끌어들이고 파키스탄의 최대 적수 인도와 미국이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이에 대응하는 것, 그럴싸한 그림이다.

바이든은 러시아에 대해 온갖 종류의 보복을 암시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 역시 러시아 정치인들이 그들의 영국 내 자산을 주무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을 완전히 해소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푸틴은 제재에 대항할 카드를 많이 가지고 있다. 나토 회원국들 대부분 러시아의 석유·가스 및 기타 원자재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 서방 세계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바이든의 결단이 중요하긴 하지만, 푸틴은 바이든을 ‘말만 앞서고 행동은 거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다. ‘엄포’는 중요한 전술이지만 실질이 받쳐주지 않으면 역효과다. 어쨌거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무력화시켰으니 일단 푸틴이 이긴 모양새다. 그는 러시아 군대를 우크라이나 국경 바로 밖에 영구 배치할지 모른다. 바이든이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전쟁을 불사할지 여부는, 미국의 ‘종이 동맹국들(paper allies)’이 진지하게 그 편에 설지 결정하는 것을 봐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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