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죽은 엄마를 생각했어요
또다시 저는 울었어요 죄송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어디야? 꿈속에서
응, 집이야, 수화기 저편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데
내가 모르는 거기 어딘가 엄마의 집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엄마의 집은 아프지 않겠구나
병원에는 가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식후 삼십분 같은 말을 생각했어요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 사람을
마스크를 쓰기 위해 얼굴이 돋아난 사람을
오, 이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일어나주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죄송해요
울먹이면서
멀쩡히 잘 살아갑니다, 실없는 꿈속에서
어디야?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
거기 먼 집
닫지 못한 문이 있고 여태
늦된 겨울을 건너다보고 있을 엄마, 감기 조심해

박소란(1981∼)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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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화자(話者)는 지금 독신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독신은 자유롭지만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고작 감기일 뿐인데’ 죽은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눈물의 본질은 서러움과 그리움일 터인데, 주변에 아무도 없다. ‘고작 감기일 뿐인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죽으면 ‘아프지 않은 집’에 사는 엄마 곁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또 든다. ‘고작 감기일 뿐인데’ 마음이 한없이 약해진 것이다.

서럽게 울고 난 뒤에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면서 ‘식후 삼십분’ 뒤에 먹으라는 약봉지에 눈길이 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고’ ‘마스크를 쓰기 위해 얼굴이 돋아나’ 있고, 뭐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겠어, 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독감을 털고 일어난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일어나주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죄송해요’ 하고 독백하면서, 저승에서 여태 문을 닫지 못하고 ‘늦된 겨울’ 같은 화자를 건너다보고 있을 엄마의 당부를 생각한다. 감기 조심해!

그래도 화자(話者)는 행복하다. 아플 때 생각나는 엄마가 있고, 엄마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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