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김수영(1921~1968)
 

시인 김수영. /나무위키
시인 김수영. /나무위키

☞김수영은 4.19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던 1960년 10월에 이 시를 썼다. 김수영은 제2공화국과 민주당의 장면 내각이 제1공화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수영은 이 시를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 보냈지만 실리지 못했다.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시라기보다는 시의 형식을 빌린 정치적 표현이다.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를 가져다 ‘샘’이란 제목을 붙여 전시했듯 이 또한 작품이다.

‘김일성 만세’는 자유의 반어법이다. ‘김일성 만세’라 말하는 사람을 잡아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유권이 무한정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권에는 내재적 한계가 있는데, 이에 대한 학설 다툼은 헌법학의 큰 과제이다.

또 5.18이 왔다. 지난 날 민주당과 정의당은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역사적 사실을 국가가 정의한 뒤 이를 부인하는 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실로 아이러니하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좌파를 지향하는 정당이 신 메카시즘 바람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반공이 국시였던 그 서슬퍼런 시절에 ‘김일성 만세’를 쓴 시인은 잡혀가지 않았다. 김수영의 시는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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