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올해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한국가톨릭이 배출한 첫 추기경인 그는 종교 간 울타리를 넘어 국민적 추앙을 받아온 분이다. ‘혜화동 할아버지’란 애칭이 그걸 반영한다. 누구는 ‘우리 곁에 왔던 성자’라 하고, 실제로 그런 제목의 책도 등장했다. 얼마 전 탄생 100주년 미사 때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독재체제 때 그분이 민주주의의 보루였다"고도 칭송했다. 그는 47세에 추기경에 오른 뒤 선종까지 무려 40년간 한국가톨릭의 얼굴이었다.

그렇다. 그 40년은 박정희에서 노무현에 이르는 현대사와 정확하게 겹친다. 때문에 고인을 20세기의 시야에서 조망해야 뭔가가 새롭게 보일텐데, 그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자부심이 특별했다. "교회는 인간 존엄성을 짓밟는 악과 불의에 저항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당신 자서전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강조했다. 의문은 민주화운동이 사실상의 좌익운동이었다는 의견이 아직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추기경의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이 좀 빛바랜다. 이참에 그의 박정희 시대 인식도 점검해보자.

추기경은 개발연대가 악과 불의의 시대였다고 자서전에서 단정하지만, 당혹스럽다. 그게 전형적인 좌파적 인식과 뭐가 다를까? 박정희 18년 동안 우린 연평균 9% 성장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19배 증가했다. 그때가 대한민국의 청년기였고, 속살이 쪘던 시기다. 추기경은 그걸 잘 몰랐거나 외면하려 했던 건 아닐까? 실은 추기경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실상 대부였다는 말도 있다. 70년대 당시 벌써 정구사가 가져올 악영향에 대한 경고가 있었는데, 추기경의 가톨릭대 동기인 정하권(96) 몬시뇰도 그중 한 분이다.

그는 "교회 공조직이 아닌 정구사를 허락할 경우 후회할 날이 온다"고 했는데, 지금 무려 80%가 넘는 가톨릭 내 냉담자도 그런 배경이다. 실은 김 추기경 이전 한국가톨릭의 간판은 노기남(1902~84) 대주교였다. 반공의 상징이던 그분은 1942년 한국인 첫 주교로 서품됐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 잊혀지고, 김 추기경으로 세대교체가 성큼 이뤄졌다. 혹시 지난 30년 격동기에 한국가톨릭이 균형을 잃었던 건 아닐까? 김 추기경에 대한 비판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금기다. 이 글이 첫 비판일텐데, 우상이 깨져야 세상이 발전한다. 한국가톨릭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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