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술자리 문화는 어떻게 다를까. 우선은 술자리에서의 서열인 것 같다. 북한 술자리는 윗사람이 되는 기준이 직책이나 사회적 지위보다 연장자순이다. 당비서든 사장님이든 술자리에 앉으면 나이 많은 말단 직원보다 높지 않다. 당연히 술도 먼저 따라주는 게 예의다.술 따르는 방식도 차이가 있다. 남한에서는 상대의 잔이 완전히 비어야 부어주는데, 북한에선 상대방 술잔이 어느 정도 비면 눈치껏 덧잔으로 채워 준다. 일본·중국·북한 등 주변국들도 다 덧잔을 붓던데 왜 유독 남한만 다른지 모르겠다.술자리에 늦게 온 사람에게는 ‘"’후래자 3
중국이 꼬리를 내린 것인가? 뭔가가 변하긴 변했다는 관측이 요즘 힘을 얻고 있다. 때문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이른바 베팅 발언으로 악화됐던 양국 갈등이 봉합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은 그 전인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 상하원 연설에도 불만을 제기한 바 있고, 양국 사이엔 쌓인 게 꽤 많았다. 그렇게 불편했던 한중관계가 정말 개선될까?긍정적인 징후는 6월 27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서 나타났다. "중국은 한국과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킨다는 기본 입장에 변화 없다"는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의 전날 발언을 제목으로
독일 철학자 칸트(E. Kant)는 프랑스 철학자 루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루소(J. J. Rousseau)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등장하는 윤리정언명령인 "인간은 반드시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담겼다. 칸트는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dignity)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칸트의 관념철학은 이후 헤겔(G. F. Hegel)에 의해 완성된다. 헤겔은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서로 존중할 때 생겨난다며, 소위 존중(respect)개념을 사상의 핵심으로 삼았다. 칸트와 헤겔의 관념철학
깨끗한 환경일수록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실제로 환경을 개선하고 위생을 강조하면서 많은 질병이 사라졌다. 하지만 청결할수록 발병이 늘어나는 질병이 있다. 알레르기 질환이 대표적이다.선진국의 위생적인 도시에 사는 아이가 후진국의 농촌 아이보다 알레르기 질환이 더 발생한다. 서독의 어린이가 상대적으로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인 동독 어린이보다 천식·아토피·비염의 발생 빈도가 높았다. 기생충이 많은 국가보다 기생충이 사라진 선진국에서 알레르기 질환이 많다. 브라질의 콘데라는 어촌 마을은
2024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니키 헤일리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는 인도계 여성 정치가다. 오래전부터 장래가 촉망됐던 헤일리는 지난 6월 27일 미국 최고의 보수 씽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에서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가 더 이상 아니다. 중국은 미국의 적이다"라는 사실상의 폭탄 선언을 했다. 물론 중국을 미국의 적이라고 선언한 최초의 정치적 인물은 트럼프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중국은 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시점은 트럼프가 아직 기업가로 있을 때였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4년 전인 2011년 간행된 책을 통해 한 말이었다.니키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지 17년째, 그동안 핸드폰을 몇 번이나 바꿨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보통 2년에 한 번꼴로 바꾼다고 치면 여덟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다단계 마케팅에 속아 괜히 바꾼 적도 있고, 더 좋은 기종을 욕심내 바꾼 것까지 합하면 더 될 것이다. 핸드폰을 바꿀 때면 현대문명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핸드폰 없이 단 하루도 못살 것 같다.하지만 핸드폰과 같은 현대문명의 성과가 늘 우리에게 편리함과 같은 좋은 측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부작용도 있다. 핸드폰은 사람들
세상에 저런 애물단지가 없다. 전직 대통령 문재인 얘기인데, 점잖은 국가 원로로 남아있으면 딱 좋았으련만 그는 세상 상식을 배반한다. 이번엔 6·25전쟁을 국제전으로 부각하며 김일성의 전쟁 책임을 가려준 게 화근이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6·25를 미중 국제전쟁으로 보는 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 등이 분노한 것도 당연하다. 이번 사건은 전직 군통수권자의 국기문란 행위에 해당하고, 엄하게 죄를 물어야 옳다.문제는 무너질대로 무너진 지식사회의 구조다. 이걸 일으켜세우지 않으면 일회성 분노에
대영제국의 초석을 깔았던 엘리자베스 1세를 이은 제임스 1세는 무능했다. 그래서 궁 안 자신의 방 옆에 작은 방(Cabinet)을 마련해, 측근과 책사들을 두고 국가 운영에 따른 정책 조언을 받았다. 이것이 영국 총리와 장관들을 ‘캐비넷 멤버’라 칭하는 이유다.일본 명치시대 철학자들은 캐비넷을 어떻게 번역할지 머리가 아팠다. 결국 문지방 안이란 뜻의 내각(內閣)으로 번역했다. 모방의 달인 일본답게 내각에서 비롯된 각료·개각·개의·개원 등, 우리가 흔히 쓰는 정치 파생어들을 만들어 냈다.일본은 공영방송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BBC
‘연가시’라는 영화가 있다. 사람의 뇌를 조종해 익사시키는 변종 연가시가 한국을 초토화시킨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좀 과장됐지만, 자연계에는 뇌로 침범해서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체가 여럿 있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에는 개미를 조종하는 기생충이 나온다. 소나 양 등의 담도에 최종 기생하는 창형흡충의 유충은 중간 숙주인 개미를 좀비로 만든다. 소나 양의 배설물에 섞여 배설된 창형흡충의 알은 달팽이 등에 먹힌 뒤 부화해서 유충 상태로 땅으로 나온다. 이 유충을 개미가 먹으면 이상행동을 하게 된다. 개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풀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연구하려는 대상을 찾아내기 위해 역사를 샅샅이 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두 나라 병사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총격전이 벌어졌고 그 결과 양측 도합 10명의 병사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치자. 그 사건은 전쟁인가 아닌가? 국제정치학자들은 이같이 10명 정도 사망한 사건은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국가 간의 모든 무력 분쟁을 전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학자들이 대략적인 합의를 이루고 있는 전쟁의 기준은 전투 사망자가 1000명 이상 발
대통령이 최근 보훈이 곧 안보라고 했다. 맞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말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군 가산점제도와 관련한 열띤 토론을 보았다.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나름대로 다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군 가산점을 두고 성차별이라는 의견이 있는가하면, 그렇다면 여자도 다 군대에 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맞섰다.필자가 보기에는 논점을 잘못 선정한 논쟁이었다. 아니 논쟁이 아니라 언쟁이었다. 좀 더 진하게 표현하면 군가산점 문제가 아니라 성차별 문제, 양성평등 문제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었다.그것을 보면서 북한에도
요즘 와글대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른바 ‘킬러문항’에 대한 질타는 너무도 정당하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수능 난이도에 관한 시시콜콜한 지시 같은 게 아니다. 공교육 강화를 통한 사교육비 절감이 핵심이다. 단, 차제에 사회적 논의의 시야를 더 넓혔으면 한다. 즉 평등교육이란 이름의 울타리에 갇혀 과당경쟁을 벌이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탈출할까를 논의하는 게 맞다.사실 평등교육은 좌파 세력에겐 ‘철의 원칙’으로 통한다. 때문에 수월성 교육 얘기를 꺼내면, 시장경쟁 논리를 교육 현장에
인류사 첫 번째 대학은 1088년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개교한 볼로냐대학이다. 그러나 국가 성격·대학 규모·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1096년 영국에서 개교한 옥스퍼드대학이 진정한 인류사 첫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옥스퍼드 수사들이 정치적 핍박을 피해 이주한 후 1209년 개교했던 케임브리지대학이 두 번째 대학일 것이다.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은 ‘옥스브리지’로 불리며 한 뿌리를 이루고 있다.천 년 역사를 간직한 옥스브리지는 문예부흥과 계몽주의철학 시대를 거쳐 영국 자유주의 문명을 전 세계로 전파한 문명의 등불이었
방심한 사이 숨기고 싶은 생각이 드러나는 실언을 해서 난처한 경우가 있다. 이를 프로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실언 혹은 말실수는 남에게 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무의식중에 밖으로 드러내는 데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다. 상대의 감정을 인식하고 맞춰가며 살아간다. 상황에 따른 적합한 감정과 적절한 언어는 필수다. 상가에서는 위로를 보내고 잔칫집에서는 축하의 말을 건넨다. 승자는 패자 앞에서 기쁨을 참고 패자는 감정을 누르고 축하를 보낸다. 그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
한미동맹 덕택에 한반도 역사에 전쟁 없는 70년이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육군사관학교 전쟁사 교과서는 지난 수천 년 동안 한반도를 향한 외세의 침범이 무려 1000번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대략 2-3년마다 한 번 이상 외세에 의한 대소 규모 전쟁이 발발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난 70년은 한국인들이 전쟁을 잊어버릴 만도 한 짧지 않은 시기다.물론 북한은 그동안 휴전협정을 무수히 어겼고 그 결과 게릴라 전쟁 수준의 작은 무력 충돌은 수도 없이 일어났다. 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사건, 강릉 삼척 무장공비 침투
남한은 신세대의 연애 목적이 북한과 다르지 않나 싶다. 결혼할 의도로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 그 자체를 즐기는 건지, 금방 눈이 맞아 사귀는가 싶더니 어느 날 보니 벌써 헤어진 상태인 경우를 많이 봤다. 북한에선 결혼 전에 여러 이성과 연애한 경험이 많으면 흠이다. ‘끼’가 있어서 그렇다고 본다. 끼가 있다면 누구와 결혼해도 언제 사고칠지 모르니 흠이다. 그렇다고 남녀가 똑같은 건 아니다. 아직 유교적 세태가 강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흠이다.북한에서 연애란 결혼으로 가는 전 단계다. 그만큼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를 고르는 것
공부가 덜된 정치인들이 문제다. 그럴듯한 궤변으로 국민을 오도하기 때문이다. 대구시장 홍준표의 최근 발언이 그렇다. 그는 최근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에 사로잡힌 사이비 기독교 세력은 대구에서 추방돼야 한다고 단호하게 언급했다. 배경엔 경북대 인근 이슬람사원 건립을 위한 갈등이 있다.그 맥락에서 홍준표는 "글로벌 대구를 만들기 위해 10억 인구의 이슬람을 배척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좋다. 저출산 고령화 현실에서 오는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어느덧 한국은 미국·유럽처럼 다문화정책과 이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니까 말이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총살 직전 시베리아 유배로 감형돼 목숨을 건졌다. 그의 소설 에서 총살 전의 5분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후의 삶을 신이 준 선물로 여기며 평생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다. 도스토옙스키는 무신론적 혁명주의세력들을 강하게 배척했다. 그의 소설 은 이념이 어떻게 인간을 악령으로 만드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기발하게도 의 서두는 복음서를 인용하고 있다. "악령들려 미친 사람들을 향해 악령아 돼지떼에 들어가라고 예수께서 외치자, 악령들린 돼지떼는 호수로 뛰어내려 모두 익
그리스 아테네 교외의 아티카라는 마을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강도가 살았다. 그는 여관을 지어놓고 행인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준 뒤, 밤에 그 사람을 침대에 묶고 침대보다 길면 잘라 죽이고 짧으면 잡아당겨 죽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다.자신의 기준에 남의 생각을 뜯어 맞추려는 사람이나 태도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비유한다. 세상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개인과 사건은 다면적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한 면만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우리와 다르면 틀린 것이고 우리 편이 아니면 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한 중국 대사 싱하이밍(邢海明)의 처소를 직접 찾아가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에 대한 대책을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 싱하이밍 중국 대사는 백 수십 년 전, 마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조선의 조정을 우습게 보고 이래라 저래라 했던 것과 아주 유사한 행태를 보이고 건방진 훈수를 해댔다.특히 그는 "중국 패배에 배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한국 정부를 겁박했다. 이에 우리나라 외교부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초치해 엄중 경고하기도 했다.중국에 굴종했던 문재인 정부 탓인